한국일보

‘너무도 쓸쓸한 당신’

2001-03-2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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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자의 세상읽기

▶ 권정희 <편집위원>

얼마전 한 한인마켓안 간이식당에서 우동을 먹는데 주방 아주머니들이 한숨을 쉬며 이야기를 했다. 그 마켓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60대 중반의 아주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졌다는 내용이었다.

“생활력없는 남편 대신해 자식들 공부시키느라 억척으로 일을 했어요. 그러다 덜컥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니 남편 심정이 오죽하겠어요. 한약이라도 다려 먹이고 싶은 마음에 (부인을) 집으로 모셔왔으면 하는데 자식들이 질색을 하는거예요. 양로병원으로 보내겠다는 거지요” “자식 위해 살아봤자 헛일이다. 자기자신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아주머니들은 결론을 지었다.

이민가정의 일반적인 형편을 전제로 할때, 24시간 보살핌이 필요한 어머니를 양로병원에 입원시킨다고 그 자녀들을 불효라고 할 수는 없다. 모두 일 나가고 하루종일 아무도 없는 집에서 연로한 아버지에게 어머니 간호를 맡기느니 전문 의료진이 상주하는 양로병원이 안전하다는 것이 자녀들의 판단이었을 것이다. 가슴 아픈 것은 그렇게 해서 평생을 같이 살던 부부가 본인들 의사와 상관없이 생의 마지막을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말 한국의 보건복지부는 ‘건강수명’이라는 것을 조사해 발표했다. 사람이 질병이나 장애없이 살수 있는 나이를 말하는데 98년말 현재 평균 건강수명은 64.3세로 나타났다. 평균수명이 74.4세(97년말 현재)인 것을 감안하면 보통 10년 이상을 각종 질병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국통계는 미국에 사는 이민1세 노인들에게도 비슷하게 적용될수 있을 것이다. 다른 점은 미국에는 노인 복지시설이 잘돼 있다는 것이다. 노후에 병든 몸을, 먹고살기 바쁜 자녀들에게 의탁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마음 편한 일이지만 그것이 노부부의 ‘별거’로 이어지니 안타깝다. 노년의 ‘이산 부부’가 되는 것이다.

지난주 세상을 떠난 한 친지의 어머니도 그런 케이스였다.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양로병원으로 들어가면서 부부가 거의 8년을 떨어져 살았다. 부인이 집에서 남편을 간호할 만한 건강은 못되고, 그렇다고 남편따라 양로병원으로 들어갈수도 없으니 ‘이산 부부’가 되고 말았다.

“자식들이 어머니를 모시고 가야 두분이 만날수 있는데 나중에는 어머니 기력이 약해져서 한두달에 한번 정도밖에는 못갔어요. 평생 금슬좋던 분들이 그렇게 떨어져 말년을 보내는 걸 보니 가슴이 아프더군요.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사실도 아직 모르세요”

사이좋은 부부의 ‘이산’이 쓸쓸하다면 사이나쁜 부부의 ‘이산’은 씁쓸하다. 배우자를 양로병원에 보낸 할머니·할아버지가 모두 떨어져 있음을 안타까워하는 것은 아니다. 양로병원 소셜워커들의 말을 들어보면 버스 갈아타며 매일 방문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분은 한두달이 지나도록 찾지 않아서 병원직원들이 환자에게 배우자가 있다는 사실도 모른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남편을 병원에 둔 할머니들이 전자에 해당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대개 할아버지들은 지성으로 아내를 돌보는데 할머니들은 심신의 자유를 느끼며 바깥 생활을 즐긴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들이 그렇게 정성을 쏟는 것은 죄의식 때문이에요. 그 세대에는 부인에게 함부로 하던 남편들이 많았잖아요. 부인이 쓰러지고 나니 고생시킨 것이 마음에 걸려 매일 들여다보는 것이지요. 평생 눌려 살던 할머니들은 남편이 병원에 들어가고 나면 해방감을 만끽하는 것 같아요”

자매가 나란히 100살 넘게 장수해 화제가 됐던 흑인 할머니들이 있었다. ‘들레이니 자매의 첫 100년’이란 책까지 냈던 베시와 새디 들레이니라는 이 할머니들은 생존시 “100살을 넘게 사는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낙천적이고 유머러스했던 이 할머니들의 위트있는 대답은 이런 것이었다.

“평생 결혼을 안했거든. 죽도록 속썩이는 남편이 없었기 때문이야”

문제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미래다. 양로원의 ‘너무도 쓸쓸한 당신’들, 노년 이산부부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미래를 보는 눈이 있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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