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단전사태 본질부터 밝혀라

2001-03-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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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설

캘리포니아주가 또다시 강제단전 사태를 겪었다. 샌디에고에서 오리건주 경계에 이르는 가주 전역 100만가구가 이틀동안 순환단전을 당했다. 남가주는 처음이지만 주 전체로는 지난 1월에 이어 두 번째 겪는 일이다.

전기가 나간 학교에서 어린이들이 플래시를 들고 화장실에 가야했고 엘리베이터에 사람들이 갇혀 소방대원이 출동하는 사태를 빚었으며 교차로의 신호등이 나가는 바람에 곳곳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예고 없는 단전으로 생산 일정에 차질을 빚은 기업들의 피해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 그 중에서도 가장 크다는 캘리포니아주에서 강제단전 사태라니 납득하기 어렵다. 6.25동란 직후 어렵게 살던 시절 한국에서나 겪던 일이 아닌가. 주초 90도대를 오르내리던 수은주가 다소 내려가면서 더 이상의 강제단전은 피하게 됐지만 본격적으로 에어컨을 가동하게될 여름 성수기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참으로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전력위기가 표면화된 지가 하루 이틀이 아닌데 아직도 사태의 해결은커녕 그 본질조차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주의회가 1996년 통과시켰다는 전기자율화 법안은 과연 소비자의 이익을 위해 마련된 것인가, 아니면 소비자 단체들의 주장대로 거액의 정치자금을 지원해준 거대 유틸리티 회사들을 위해 마련된 것인가. 도매업자들이 담합을 해서 폭리를 취했다는 주장은 사실인가. 가주 독립시스템 운영국(Cal-ISO)의 보고에 따르면 도매회사들은 지난해 5월 이후 지난달까지 가주 주민들에게 55억달러의 바가지 요금을 부과했다고 한다.

장기적으로 볼 때 발전소 신축 없이는 가주 전기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다고 하는데 주정부는 합리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레이 데이비스 주지사는 현재의 전력난을 해결할 능력이 있는지, 이를 해결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는 있는지 소비자들은 궁금하다.

전력난이 장기화되면 가주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보고서가 나왔다. 전기요금이 계속 오르고 툭하면 단전사태로 비즈니스에 타격을 입을 경우 전력 수급에 지장이 없는 타주로의 이전을 고려할 업체가 늘어날 것이 틀림없다. 가주 전력난이 표면화된 지난 1월 이후 가주 소재 기업을 대상으로 한 타주 정부들의 유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데이비스 주지사는 지금이라도 사태의 본질을 투명하게 밝히고 근본적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전 주민 차원의 절전 캠페인이라도 전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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