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동북아 기류에 이상 있다

2001-03-22 (목)
크게 작게

▶ 인사이드

▶ 옥세철 <논설실장>

조지 케난은 2차대전 직후 미 해외전략의 기본 틀이 된 소련봉쇄 정책 입안자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케난이 요즘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을 받고 있다. 냉전 초기 소련 지배하의 동구권에서 공산체제를 몰아내려는 이른바 ‘로울백 정책’의 비밀 전쟁에 깊숙이 관여됐던 사실이 알려져서다.

이를 밝혀낸 사람은 피터 그로우스다. 그는 최근 저서 ‘로울백 작전: 철의 장막 안에서의 미국의 비밀전쟁’을 통해 미국이 동구 및 소련에서 침투, 사보타지, 게릴라전, 정치선전 등이 총망라된 비밀 전쟁을 수행한 사실을 증명하면서 이 작전에 케난이 관여한 사실도 아울러 밝힌 것이다. 소련의 지배를 받는 동구권에서 민중봉기를 유도하고 동구 주민들의 자유를 지원함으로써 소련의 막대한 출혈이나 체제 전복을 노린 것이 비밀 전쟁의 주 목표였다.

그로우스는 그동안 단편적으로만 알려진 ‘냉전시대 에피소드’들을 사실로 확인해 준다. 수십 차례에 걸쳐 동구권 및 소련 본토 침투 비밀 작전이 이루어졌던 것도 새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주목을 끄는 부문은 비밀 작전에 참가한 사람들, 다시 말해 ‘냉전 전사’들의 의식구조다. 대부분이 용감하고, 애국적이고, 무엇보다도 철저한 반공주의자들로 묘사돼 있다. 공산주의자를 근본에서부터 불신, 공산체제는 궁극적으로 타도의 대상이라는 게 이들의 의식구조다.


로울백 정책은 나중에 다시 살아난다. 레이건의 해외정책이다. 공산 좌익세력의 확산을 저지한다는 방침 하에 라틴 아메리카 등 제3세계에서 민주세력 및 반공 우익체제를 강력히 지원했던 것이다. 로울백을 표방한 레이건 해외정책이 사실상 소련의 붕괴를 이끌어냈다는 게 냉전이 끝난 요즘의 평가다.

김대중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과 관련해 여러 가지 험한 이야기가 들린다. ‘햇볕정책 면전 박대’ 정도는 점잖은 표현이다. 미국 신문의 관련 해설기사, 칼럼, 사설 등의 행간 행간에는 햇볕정책과 관련해 부시 행정부의 극히 불편한 심기가 적지 않이 묻어있는 느낌이다. "부시는 DJ(원문은 Kim이라고 표현했음)의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를 유보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종의 ‘바디 잉글리시’를 통해 방문객에 대한 불쾌감을 그대로 나타냈다"(워싱턴포스트) "부시 대통령이 미사일 방위체제를 구축하려는 이유는 바로 한국과 같은 미국의 맹방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김 대통령은 이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노벨 평화상은 나이스한 것이다. 그러나 노벨 평화상이 방탄조끼가 될 수는 없다"(월스트릿 저널) "부시 진영의 일부 사람들은 DJ가 지나치게 빠른 보폭으로 북한과의 평화를 모색하는 것과 관련해 심지어 물러난 이스라엘 총리 에후드 바라크와 넌지시 비교하고 있다"(시사주간지 타임)

DJ의 햇볕정책에 부시는 왜 비례에 가까운 불쾌감을 표출했는지 그 이유에 대한 해석은 정상회담이 끝난지 두 주가 지난 시점에서도 상당히 구구하다. 정권교체 과정에서 아직 전 클린턴 행정부의 북한정책을 충분히 재검토해 보지 못한 결과다, 한-미간의 시각 차이에서 빚어진 일시적 해프닝일 뿐이다 등등 해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히 볼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외교적 관행이 너무 무시됐기 때문이다.

해외정책, 특히 북한문제와 관련해 부시 행정부 내에서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졌다는 시그널로 보아야 할 것 같다. 부시 행정부내 매파는 ‘중국이 사실상의 중재자 역할’을 한 남북화해에 대해 그렇지 않아도 불신의 시선을 쏟아왔다. 그 불신은 더 증폭됐다. DJ가 부시 행정부의 국가 미사일방어 계획과 관련해 러시아 편에 선 인상을 주어서다. DJ의 워싱턴 방문을 맞아 부시는 매파의 입장에서 그 불신감을 일종의 외교적 비례의 형식으로 표출했다.

공화당내 강경파는 딕 체니, 도널드 럼스펠드 등으로 대표된다. 이들은 바로 역전의 ‘냉전 전사’들이다. 이 공화당 냉전 전사들은 소련이 붕괴되자 바로 정권을 내놓았다. 그들이 평생을 걸고 싸워온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나 전후의 뒷수습에서는 제외됐던 것이다. 이제 이들이 되돌아 온 것이다.

"부시는 중동문제와 관련해 미국이 당사자들보다 더 평화를 원할 수는 없다고 말해 왔다. 한반도의 경우에서는 반대로 말하는 것 같다. 미국이 한국민들보다 평화를 덜 원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타임지 칼럼니스트의 지적이다. 이 말이 공연한 소리같이 들리지 않는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