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지의 시대를 향하여

2001-03-2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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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시각

▶ 로버트 새뮤엘슨 (워싱턴포스트 칼럼)

경제가 과연 교과서대로 움직이는지 곧 알게 될 것이다. 주식시장이 흔들거리자 FRB는 교과서적인 경기침체 잡기 조치를 취해 단기금리를 인하했다. 의회에서는 세금 삭감을 논의하고 있다. 두 가지가 다 교과서에 나와 있는 경기부양 방법이다. 그러나 교과서도 틀릴 수 있다.

미국 경제는 지난 1991년부터 시작, 사상 최장의 성장기를 기록했다. 89년 32%였던 미가정 주식보유율은 98년 49%로 늘었다. 주식의 가치는 89년 말 3조2,000억달러에서 2000년 3월 현재 17조1,000억달러로 5배가 올랐다. 컴퓨터, 소프트웨어,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를 중심으로 하는 하이텍 부문에 대한 투자는 2000년 전체 비즈니스 투자의 60%에 달했고 90년에 비해 33%가 늘었다. 모두가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붐이 이다지 신속히 사라지는 것도 예상치 못했었다. 교과서를 다시 써야할지 모르겠다.

FRB는 은행 시스템에 통화를 투입함으로써 이자율을 낮춘다. 연방재무부 증권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며 그 결과 은행의 예비자금이 증가한다. 은행들은 잉여 예비자금을 줄이기 위해 단기금리를 인하하게 된다. 연쇄반응으로 모기지와 장기채권의 금리가 하락한다. 결국 소비자와 비즈니스 대출이 늘어나며 이에 따라 지출이 증가한다. 모기지 재융자가 늘고 페이먼트가 낮아진다. 역시 가계의 구매력을 증가시켜 준다. 머니마켓 구좌와 채권의 이자율이 하락하게 되므로 투자자들이 주식투자에 눈을 돌리게 된다. 주식시장이 활기를 띠게 된다. 마지막으로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의 가치가 하락하고 그 결과 미국 상품의 수출 경쟁력이 높아지며 제조업이 활기를 얻는다.


이 모든 예상이 들어맞는다면 좋지만 불행히도 맞지 않을 확률이 높다.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부채다. 10년여의 성장기를 거치는 동안 개인이나 비즈니스가 많은 부채를 지고 있다. 이자율을 낮춰준다고 해도 더 이상 부채를 걸머지기가 어렵다. 90년 미가구의 부채는 개인 가용소득의 85%였는데 2000년에는 105%로 늘었다. 기록적인 수준이다.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다. 52년이래 미기업의 신규투자중 8%만이 부채였는데 98년 이후에는 20%로 늘어났다.

재융자 부문을 들어보자. 2000년 평균 모기지 이자율은 7.4%였는데 지난 두 차례 단기금리 인하의 결과 7%선으로 내려갔다. 7.4%에서 7%로 내려갔다고 재융자를 서두는 사람은 없다. 또한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주식투자 보다는 5% 이자율의 머니마켓 투자가 훨씬 매력적이다. 달러화의 가치도 일본과 유럽경제의 침체로 인해 하락하지 않고 있다.

감세는 교과서에 나오는 또다른 경기침체 대응수단이다. 그러나 최근 하원에서 통과한 부시 감세안이 2001년도에 납세자 한사람에게 주는 평균 혜택은 20달러에 불과하다. 이 정도 혜택으로 급감하는 하이텍 부문 투자와 급락하고 있는 주식시장을 부양시키기는 역부족이다.

물론 이 모든 주장이 과장된 것 일수도 있다. 실업률은 여전히 4%선이다. 지난주 갤럽조사에 따르면 주가하락이 개인재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답변은 29%,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답변은 69%나 됐다. 런던의 한 경제학자는 "오지도 않은 불경기를 놓고 경제 전문가들이 찧고 까불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늘의 경제상황은 우리가 처음 경험하는 것이며 제대로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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