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들풀과의 대화

2001-03-21 (수)
크게 작게

▶ 김명욱<목회학 박사>

봄바람이 새롭다. 지나간 겨울은 꽤나 지루했다. 눈도 많이 왔다. 추위도 매서운 바람을 타고 눈보라를 몰아왔다. 온 누리를 삼켜버릴 듯 춥고 삭막한 날들이었다. 내복을 입지 않는 미국의 풍습. 한국서 이민 온 사람도 그 풍습대로 간다. 겨울 내내 찬바람이 바지 가랑이를 타고 올랐다.

회사 내 주차장 구석에 피어나 아무도 돌보지 않는 풀 두 포기. 겨우내 나는 그 풀들을 살펴봤다. 살펴보기보다 그냥 때가 되면 발걸음이 그리로 향했다. 눈보라가 치던 날도. 싸라기가 뿌려대며 한 겨울 매섭게 기온이 하강하던 날도. 폭설주의보가 내린 다음날은 아예 눈이 높이 쌓여 가서 볼 엄두도 못 냈다.

뉴욕의 날씨는 조석으로 변한다. 춘삼월이 되고도 눈은 몇 차례 더 왔다. 기나긴 겨울을 누구 하나 보호해 주지 않는 황야 같은 주차장. 땅도 아닌 콩크리트 한 모서리를 비집고 뿌리내린 풀들의 생명이 기적처럼 살아나 있음을 나는 보았다. 수년 동안 나로 하여금 생명의 끈질김을 보여준 풀들 중 유일하게 긴 겨울 잘 견디어낸 이름 없는 풀들을.


한겨울 긴 낮과 밤을 견디며 끝끝내 얼어죽지 않은 그 풀들의 생명력에 스스로 머리 숙일 수밖에 없다. 따스한 봄볕이 드는 어느 상오. 풀들에게 다가가 안부를 묻는다. 그리곤, 내려 쬐는 햇볕을 그림자로 가릴까 조심스럽게 들여다본다. 파릇파릇한 잎들이 향기를 뿜는 듯 하다. 저 들풀들의 생명에 비해 사람의 생명이란 얼마나 값진 것일까.

이제는 봄. 어디서 날아올 지는 몰라도 민들레 씨앗들이 흩뿌려져 와 파란 잎을 나게 하고 꽃을 피울 것이다. 그리곤, 겨우내 잘 견딘 이 풀들과 어깨를 나란히 동무가 될 것이다. 한 여름내 주차장 모서리에 피어나는 들풀은 20여 그루가 넘는다. 이렇듯 피어나게 될 들풀들은 올 여름에도 주차장 관리 아저씨들에게 발각돼 뿌리째 뽑혀 나갈지 모른다.

그래도 풀들은 나무라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뽑혀짐이 순리라면, 그 순리에 잘 길들여진 풀들은 아저씨들을 욕하지 않는다. 그냥, 순간이지만 단단한 콩크리트에 생명의 씨앗을 내려 줄기를 치고 잎을 피어낸다. 그리고 꽃을 피워 드높은 하늘에 향기를 뿌린다. 그것뿐이다.

지구상 수많은 생명 중 사람으로 태어남은 기적 중의 기적이다. 아니 신비 그 자체다. 사람은 착상 시부터 수억 마리의 정자 중 하나만 난자와 결합, 열 달 동안 인간으로 지어진다. 그러니, 주차장 들풀의 생명과는 비교도 안 되는 신비함을 지니며 사람은 태어난다.

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이 세상.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들의 생명경외는 어디로 갔는가. 땅으로 떨어진지 오랜 것 같다. ‘인터넷 자살사이트’를 통해 죽어 가는 무고한 어린 생명들. 총기로 인한 학생들의 죽음. 그 부모와 가족들의 비참함과 애통함. 그리고 정부의 나몰라라함. 잘못된 신앙으로 인해 치료를 거부해 죽어 가는 생명. 황금 만능주의로 인한 각종 범죄로 죽어 가는 생명. 전쟁과 기아로 생명을 빼앗기는 사람들.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생명을 죽이는 어리석은 사람들. 그 외에도 인간의 배를 채워주기 위해 죽어 가는 수많은 것들의 생명.

봄인데 바람이 차다. 오후 5시가 넘어 구름 덮인 하늘아래, 세상과는 전혀 관계없는 듯 보이는 주차장 들풀에게로 다시 가 보았다. 햇볕이 지나간 쓸쓸한 한 모퉁이, 들풀들이 서로 보며 "그냥 그런 대로 살아가세요" 속삭이는 듯 싶다. 내 가족 하나 편하게 돌보지 못하는 가장의 아픔을 들풀들은 아는 듯 하다. "당신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이나 열심히 하세요. 생명은 우리들처럼 뽑힐 때는 뽑혀야지요, 안 그런가요?" 들풀들은 나를 오히려 위로한다.

슈바이처 박사, 지금 하늘에서 ‘생명경외’를 외면하는 이익 집단들의 인간세상을 어찌 보고 있을까. 긴 겨울 찬바람과 눈보라를 이겨낸, 이름 없는 들풀과의 대화. 그들이 인간보다 못하지 않음을 이제야 알겠다. 그러나, 그 들풀들의 생명에 비해 인간의 생명이란 얼마나 값진 것이랴.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