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명문 캠퍼스의 아시안 파워

2001-03-2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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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 허 (하버드 법과대학원 재학)

가주 주요 대학에 아시안 학생이 인구비율에 비해 훨씬 많은 비율로 입학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아시안계 학생은 인문과학을 기피하고 자연과학과 공대에 집중돼 있다는 잘못된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UCLA와 USC에서 아시안계의 학생회 활동은 지난 20년간 꾸준히 늘고 있으며 UC 버클리와 스탠포드등 명문대에서의 정치 참여는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학생 지도자중 상당수는 졸업후 정계에 진출하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다.

이들 명문대는 미국의 지도자를 배출해낸 곳이다. 연방 대법원 판사중 4명이 스탠포드 졸업생이며 연방하원의원중 12명이 이곳 출신이다. 학창시절 정치활동과 졸업후 정치참여가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감안하면 이같은 현상은 새천년을 맞은 미국 사회에서 아시안의 정치 파워가 세질 것을 예고한다.

21년전 아시안계는 전체 스탠포드 학생의 7%를 차지했으나 학생회 간부는 한명도 없었다. 버클리는 재학생 19%가 아시안이었으나 간부는 10% 미만이었고 UCLA도 아시안이 13%였으나 간부는 7%, USC의 경우 아시안이 12%였음에도 선출직 간부는 한명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완전히 역전됐다. 96년 현재 스탠포드 학생회 간부중 30%가 아시안이며 버클리는 46%로 전체 학생 비율(스탠포드 25%, 버클리 40%)보다 오히려 많다.


미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아시안 커뮤니티를 정치권 밖에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갖가지 차별 조치를 통해 정치 참여를 배제했다. 1922년에는 아시안이 시민권을 따는 것이 금지됐으며 이는 제2차 대전이 끝난 후까지 계속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먼 미네타와 로버트 마츠이등이 공직에 선출되는등 아시안의 정치적 영향력은 계속 증대돼 왔으며 특히 80년대 이후 이같은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그러나 캠퍼스내 아시안 파워 증대와 함께 아시안계의 이슈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당선된 학생 지도자의 지지기반도 아시안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학생 전체로 광범위해지고 있으며 당선된 후에도 자신을 아시안만이 아니라 전체 학생을 대표하는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학보 진출도 활발하지 못한 편이다.

아시안들의 정치 참여가 늘어난 것은 이공계를 택하라는 부모들의 압력이 줄어드는 것과 비례한다. 77~87년 학교를 다닌 응답자는 55.6%가 이공계를 가라는 부모의 프레셔를 받았으나 88~96년 학생들은 26.1%만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이민 연륜이 깊어가면서 부모 세대의 정치를 보는 관점도 ‘모난 돌이 정 맞는다’에서 ‘우는 아이 떡 준다’로 바뀌고 있다. 사회 과학 전공 학생이 늘어난 것도 정치 의식을 높이고 있다. 아시안 미 정계 진출이 늘어나면서 롤 모델이 생긴 것도 학생들의 정치의식을 높이는 데 일조하고 있다. 77~88년 동안 기성 정치인 후원자를 갖고 있다고 답한 학생 지도자는 20%에 불과했으나 90년대에는 80%로 높아졌다.

그러나 아시안 이슈에 대한 관심은 캠퍼스 아시안이 과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오히려 줄고 있다. 버클리의 경우 77~89년 사이 아시안 이슈에 관심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8.3%에 불과했으나 92년에는 78%로 급증했다. 그러나 캠퍼스내 아시안 수가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면서 오히려 아시안만에 관한 이슈는 오히려 관심도를 잃고 있다.

80년대 중반까지 명문사립대의 경우 아시안들의 입학 허가율이 가장 낮았다. 83년 스탠포드에 재학중이던 제프리 오라는 학생이 왜 지원자는 전체의 30%에 달하는데 실제 입학생은 10% 미만인가를 따지면서 학교 당국이 아시안에게 편파적이던 입학 정책을 바꾸게 됐고 그 결과 입학생과 학생 지도자수가 급증하게 된 것이다. 84년 버클리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입학 사정시 아시안에 대한 차별이 학생들의 정치활동을 촉발시켰으며 그 결과 입학생수가 늘어나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파워가 커지고 있다.

현재 명문 캠퍼스에서의 아시안 파워는 역사상 어느 때보다 거세다. 지금 학생수에 비해 훨씬 많은 아시안이 학생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듯이 20년 후가 되면 인구 비례보다 더 많은 아시안이 미 정계에 진출하게 될 것이다. 미국에서 아시안 정치 파워의 앞날은 낙관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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