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소렌스탐 엉덩이를 차라!

2001-03-2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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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US여자오픈 골프대회에서 박세리가 태국계 제니 슈시리폰과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했던’ 20홀 연장전 끝에 우승했을때 언론과 팬들의 관심은 온통 박세리에게 쏠렸다.

부드러운 스윙과 파워, 공동묘지 훈련, 브로큰 잉글리시, 덩치 큰 캐디 심지어 해피란 이름의 강아지까지 세리에 관한 모든 것이 화제가 됐다. 매스컴에서는 "타이거는 가고 세리가 왔다"고 떠들었으며 세리는 "제2의 낸시 로페스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자 당시 LPGA정상에 올라있던 아니카 소렌스탐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스웨덴 출신으로 금발에 푸른눈의 날씬한 몸매, 영어도 불편없이 구사하는 소렌스탐은 박세리가 등장하기까지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선수다.


"세리가 골프는 잘치는지 모르겠지만 인간성부터 배워야한다. 세리의 엉덩이를 차주겠다(직역한 표현으로 실제로는 ‘혼내주겠다’는 정도의 뉘앙스)"고 큰소리쳤다. 소렌스탐은 그해 LPGA 상금왕, 최우수선수,베어트로피(평균타수가 가장 낮은 선수에게 주는상)등 3관왕에 올랐고 세리는 신인왕상으로 만족해야 했다. 변덕스런 언론들은 일제히 "소렌스탐이 명실공히 세계골프의 여왕" "세리는 일시적 센세이션에 지나지 않았다" "소렌스탐이 세리의 작은 엉덩이를 차주었다"고 방향을 선회했다.

박세리가 지난해 부진에서 벗어나 올시즌 첫대회 바이타민스 클래식에서 우승하고 소렌스탐 역시 2연승을 하면서 두사람사이에 불꽃튀는 라이벌전이 재연되고 있다. 지난주말 스탠더드레지스터 핑대회에서의 소렌스탐과 박세리 대결은 보기드문 명승부였다. 소렌스탐은 비록 -27이라는 신기록으로 우승은 했지만 박세리에게 단단히 혼이 났다. 2라운드에서 역시 신기록인 69타(-13)를 쳐 중간합계 -20을 기록하고 있던 소렌스탐이 9타나 뒤져있던 박세리에게 쫓기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치 못했다. 마지막날 14번홀에서 박세리에게 타이까지 허용한 소렌스탐이 우승을 할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행운이었다. 파3 15번홀서 박세리의 잘맞은 7번 아이언 티샷이 바람탓에 그린을 넘어 러프속으로 들어가 보기를 범한 덕분이다. 기세가 오른 소렌스탐은 다음 16번홀에서도 어려운 버디펏을 성공시켰고 박세리는 손쉬운 버디펏을 놓치는 바람에 두타차 승부가 나고 말았다.

세리-소렌스탐의 경쟁은 두사람 모두에게 바람직한 일이다. 마라톤 신기록도 어깨를 나란히 달려주는 경쟁자가 있어야 나온다지 않는가. 박세리의 US여자오픈 우승도 슈시리폰이 없었다면 우리의 기억에 남는 감동을 주었을리 없다. 이번주 열리는 시즌 첫 메이저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박세리와 소렌스탐이 또한번 좋은 승부를 보여주기 바란다. 이번엔 세리가 소렌스탐의 엉덩이를 차주면 더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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