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말싸움과 말싸움

2001-03-2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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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석<정신과 전문의>

한국신문에 커다란 말 두 마리가 앞발을 들고 부딪쳐 싸우는 장면과 이것을 스테디엄을 꽉 채운 관중들이 열심히 보고 있는 사진이 실렸다. 제목은 대보름 맞이 ‘말싸움 놀이’이다. 그 처절한 모습을 보고 나는 크게 충격을 받고 아연실색했다. 말들을 싸움 붙여놓는 것이 무슨 놀이이며 이것을 구경하는 것이 뭐 그리 재미가 있단 말인가.

그러고 보면 역사적으로 가장 잔인했던 것은 로마시대 검투사들이다. 작년에 이런 제목의 영화가 나와 그 처절한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황제와 귀족들과 시민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결투하는 것이다. 그 상대는 사자나 호랑이 같은 맹수 아니면 다른 지방에서 온 투사로 어느 한쪽이던 처참하게 피를 흘리고 죽게 되어 있다.

이런 것을 보면 인간들은 원래 잔인한 데가 있고 두 사람 또는 두 패를 싸움 걸게 하고 피를 흘리며 싸우는 것을 즐기는 본성이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런 것을 즐기는 인간들에게 묻고 싶다. 만일 자기 자신이 그 싸움의 주인공이거나 그들의 사랑하는 가족, 친척, 친구라도 그렇게 즐겁고 재미가 있을 것인가. 짐승들은 말을 못하니까 싸움을 시켜놓고 피투성이가 되는 꼴을 보고 즐기고 좋아해도 된단 말인가.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육체적인 싸움을 붙여놓고 피투성이가 되는 것을 보고 즐기고 기뻐하는 것만이 아니다. 정신적으로 싸움하게 해 놓고 구경하고 부채질하고 좋아하는 잔인한 버릇도 있다.

누가 떼돈을 벌었고, 폭삭 망했고, 누구 자식이 크게 성공했고, 누구 아들이 감옥행이었다 등등의 소문, 그리고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누가 누구하고 바람 피운다는 소문이다. 인간들이 즐기는 하나의 구경거리는 섹스이다. 이러한 거짓 소문을 내는 인간은 궁극적인 목적이 자기 이익을 위해서다.

자기의 체면을 살리는 것, 자존심을 높이는 것, 보복을 하려는 것 등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남의 헛소문, 거짓소문에 흥분하거나 신이 나서 이것을 씹고 오히려 나름대로 살을 붙여서 퍼뜨리는 인간들이 많다.

이것은 잔인하기로 말하자면 검투사들의 피 흘리고 죽는 싸움을 즐기는 로마인들보다 더 잔인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오랫동안 두고두고 정신적인 고통을 주면서 하기 때문이다. 신체적인 싸움은 쉽게 끝나지만 정신적인 고통은 당하는 사람의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 피해가 훨씬 큰 것이다.

거짓 소문을 내는 당사자는 궁극적인 자기 이익의 목적이 있지만 이러한 소문을 듣고 사실을 알려하지도 않고 흥분하고 쾌감을 느끼는 인간들의 이유와 목적은 무엇일까. 거기에도 또한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심한 노이로제나 성격 장애를 가지고 있고 이러한 것을 통해서 무의식적으로 열등감을 해소하고 자기 자신을 이상화하는 이익을 보고 있는 것이다.

만일 자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조금이라도 반성을 할 수 있을 만큼 아직 병이 심하지 않은 사람은 늦기 전에 정신과 전문의에게 상담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 쓸데없이 소문에 흔들리지 말고 자신에게 충실한 생활을 해나가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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