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대들 비 젖을 일 없겠네, 서로가 서로에게 천막 되어줄테니.
이제 그대들 추운 줄 모르겠네, 서로가 서로에게 온기 되어줄테니.
이제 그대들 외로움 없겠네, 서로가 서로에게 동무 되어줄테니.
이제 그대들 몸은 둘이지만, 앞에 놓인 생은 오직 하나.
가라 이제 그대들의 보금자리로, 함께 하는 날들 속으로…』
아파치족이 신랑신부에게 보내는 축복의 기원이다. 황야에서 찬비 맞으며 홀로 서있을 때의 뼛속까지 스미는 고독함 - 인디언들은 아마 그런 처지를 가장 피하고 싶었나보다. 그래서 사랑하는 존재가, 옆에서, 비를 막는 천막이 되어주고 따뜻한 난로도 되어주는 아늑한 행복을 결혼을 통해 희구했던 것같다.
태풍이 몰아쳐도 비 한방울 맞을 일 없게 건축이 견고하고 난방시설이 잘 되어있는 현대에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우리의 영혼은 여전히 추위와 외로움을 타서 천막 같고 난로 같은 존재를 구한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천막은 비가 새고 난로에서는 온기 대신 냉기가 뿜어지는 일들이 생기니 문제다.
지난주 북가주 몬트레이에서는 미국 정신신체증 학회 회의가 열렸다. 이름으로 봐서 마음이 몸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모임 같은데 발표 내용중 결혼과 관련한 두 연구보고가 눈길을 끌었다. 간단히 요약하면 남성에게는 결혼이 ‘보약’이지만, 여성에게는 남편과의 사이가 어떠냐에 따라 결혼이 ‘보약’도 되고 ‘독약’도 된다는 것이다.
첫번째 연구는 남성 3,000명을 대상으로 했다. 이들의 식생활등 생활습관을 분석해 건강을 살펴보니 결과가 예상 대로였다. 남성이 사별이나 이혼으로 혼자 살게되면 몸에 좋은 야채같은 것은 안먹고 몸에 나쁜 술·담배만 많이 하니 건강을 해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두번째 연구는 490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폐경전후 심혈관계 기능을 조사했다. 결과를 보면 여성에게 남편이 있느냐 없느냐는 건강에 별로 상관이 없고, 결혼생활이 행복하면 그것이 몸의 건강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남성에게는 결혼 자체, 여성에게는 결혼의 내용이 중요하다는 연구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 99년 노스캐롤라이나대학은 40대에 이혼해 혼자 사는 50대 졸업생들의 삶의 모습을 분석해 재미있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혼했다고 하면 부부 사이가 나빴던 것을 전제로 하는 데 그런데도 남성들은 혼자가 되고나자 삶의 의욕을 잃고 날개 부러진 새 같이 처량해졌다는 것이다. 반면 행복하지 못한 결혼에서 놓여난 여자들은 날개라도 단듯 꿋꿋하고 활발하게 잘 산다는 내용이었다.
몇 년전 각각 아내와 남편을 잃은 친지 두분이 재혼을 했다. 그들이 재혼 계획을 밝혔을 때 주변의 반응이 흥미로웠다. 남성을 붙자고 하는 말은 하나같이 “잘 생각하셨어요. 노년을 재미있게 지내셔야지요”였고, 여성에게 하는 말은 십중팔구가 “먹고 살 것 있는데 왜 사서 고생을 하려고 해요? 자유롭게 살지 왜 매여 살려고 하세요”였다.
결혼이 남성에게는 심신에 안정을 주는 닻, 여성에게는 옴짝달싹 못하게 옭아매는 덫이 된다는 인식이 은연중에 깔려있는 말들이다.
여성들이 느끼는 ‘덫’의 주범은 물론 가부장제와 남존여비 사상이 기초가 된 전통적 남편/아내의 역할, 불평등한 위상등 외부적 요인들이다. 하지만 여성 스스로가 ‘덫’을 조장하는 부분도 없지 않다. 배우자에 대한 감정적 의존도가 너무 높아서 남편의 말한마디, 행동 하나에 세세하게 신경을 쓰고 속을 끓이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여성들을 본다.
옛말에 부부는 3생의 인연으로 짝지어진다고 했다. 전생, 이생, 다음 생까지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야 부부로 맺어진다는 말이다. 모래알 같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서로 만나 같이 자식을 나으며 산다는 것은 보통 특별한 인연이 아니라는 정도로 해석하면 좋겠다. 대단히 소중한 인연인데 그 소중함을 살다보면 잊어버린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비를 맞으며 떨고 있지는 않을까. 천막에 비가 새지는 않는지, 난로에 불이 꺼지지는 않았는지 가끔씩 살펴보는 성의가 있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