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주차장의 금

2001-03-1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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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효원

모든 공공시설의 주차장에는 대개 금이 그어져 있다. 그리고 이 금 안에 자기의 차를 주차하는 것이 원칙이다. 나는 이 원칙을 지켰다가 망신을 당한 적이 있다.

LA 한인타운의 8가에 있는 어떤 마켓에 가서 나는 금 안에 내 차를 세웠다. 그리고 차에서 내려서 막 걸어 가려고 하자, 뒤따라 차를 세우고 내린 어떤 중년 여자가 나를 야단을 치는 것이다. 왜 세워져 있는 옆 차에서 그렇게 많이 거리를 두고 주차를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옆 차는 금을 무시하고 세워져 있었다. 이 마켓 여주인은 ‘금’이라는 원칙은 안중에도 없고, 주차할 때는 이미 세워져 있는 차에 바짝 붙여서 자기 차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속담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것이 있다. 미국 속담에도 ‘결과가 좋으면 다 좋다’라는 것이 있다. 이 둘 다 어떤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무시하고 있거나, ‘잘못된 과정’을 정당화하려고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라고 하는 것은 ‘무한 경쟁에 의한 무한 이윤 추구’이다. 미국이 지금 이토록 잘 살고 있는 것은 결과만을 중시하는 경제구조에 원인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회의하고 또 회의한다. 이렇게 많이 물자를 남용하고, 이렇게 많이 음식을 버려도 되는 것인지 의아스럽다.

국민의 반 이상이 비만에 시달린다면 분명히 국민들이 너무 많이 먹는 것이다. 미국 승용차들은 쓸데없이 점점 커지고 있다. 금 안에 차를 세우기가 버거운 것이다. 금을 지킬 필요도 없고, 과정 같은 것은 케케묵은 낡은 사고 방식이고, 절약이나 검소 같은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몰아붙인다면 이 사회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천국 그 자체보다도 거기에 이르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 모두 ‘분수’를 지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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