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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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출수록 깊어지는 중독증

2001-03-1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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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왕<선교사·한인 중독증회복 선교센터>

사랑하는 가족이 알콜 중독자로 판명되기까지는 7년의 세월이 걸리고 이를 안 가족이 중독자를 회복기관으로 인도하는 데는 2년의 세월이 더 걸린다고 한다. 이렇게 가정에서 마약, 알콜, 또는 도박 중독증의 확인이 오래 걸리고 회복시작이 지연되는 이면에는 가족의 ‘수치심’이 많이 작용한다.

성경은 인간의 수치심을 아담이 죄를 지은 결과로 설명한다. 원래 수치심은 인간의 정상적인 감정으로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건전한 수치심’은 우리들이 전지 전능하지 못하다는 제한성과 잘못할 수밖에 없는 인간적 한계 때문에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하는 심리적 기초가 된다. 그러나 수치심을 지나치게 나 자신의 결함이나 부족한 정체성으로 몰고 갈 때 ‘해로운 수치심’으로 진행한다. 나 자신과 가족의 부족한 점이나 허물들을 그렇지 않은 것 같이 보일 필요성 때문에 항상 모든 것을 은폐하려는 거짓된 자아로 발전시켜서 수치심은 모든 정서적 병의 중심이 되기 쉽다.

중독자 중에는 내성적인 사람들이 많다. 수치심이 심한 부모는 남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가족 내부의 취약점들을 외부에 알리지 못하도록 자녀들에게 당부하며 그 과정에서 자녀들은 정서적으로 격분, 긴장, 또는 슬픔 등을 경험하기도 한다. 또한 자녀들은 가족의 부족한 점이나 후회스런 사항들을 감추기 위해서 완전한 죄인이나 천사 중 어느 한쪽을 택해서 행동할 것을 강요받는다. 이렇게 가족의 수치심으로 상처받은 자녀의 내적 자아심은 생존수단으로 거짓 자아심을 갖게 하고 이는 다시 방어적 태도를 형성시켜 주기 때문에 사실상 수치심으로 자녀들은 학대를 당하는 격이 된다.


가정은 자녀들이 부모를 닮아 가는 장소이다. 수치심이 많은 가족 구성원들은 사람들을 불신하며 자신만의 비밀스런 생활을 하는 것을 ‘정상’으로 생각한다. 자녀들은 종종 자신이 부모가 수치심을 갖게 한 나쁜 장본인이므로 부모의 불행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위험한 생각을 자신의 큰 비밀로 간직하기도 한다. 이런 자신을 다른 사람들이 알면 싫어할 것 같아서 점점 더 자신의 수치심을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하는 생활태도로 발전시킨다. 성인이 되면서 어떤 일을 잘못하거나 주위 사람들이 잘못을 지적해주면 좌절감을 갖거나 방어적인 사람이 된다.

중독자들은 특히 남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행위들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가족들의 해로운 수치심은 오히려 중독증 진행에 도움을 더해 준다. 수치심으로 형성된 불신, 비밀생활, 좌절, 방어심 등은 중독증에 빠지기 쉬운 ‘예비조건’을 갖춘 사람으로 만든다. 수치심이 심한 사람들은 해소되지 않으면 안될 만큼 깊이 누적된 분노와 고통이 있으면서도 사람들을 불신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제때 표현 또는 해소하지 못한 채 견디다가 알콜, 마약 또는 도박 등과의 관계를 통해서 위로 받고 싶어한다.

중독자들은 이미 어려서부터 부정적인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고 비밀스런 생활방법을 학습하여 왔기 때문에 중독행위는 좀처럼 노출되지 않는다. 어쩌다 노출되어도 중독자는 자신의 문제들을 중독행위로 야기된 것으로 보지 않고 회복을 완강히 거부한다. 가족들도 중독자가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수치심으로 회복을 망설이게 되어 지나친 수치심은 중독증을 조장하고 회복에 걸림돌이 된다.

중독증은 정서적으로 불안한 가정과 사회 환경에서 비롯되어 육체적 질병으로 진행되는 가장 비용이 많이 들고 평생을 고생하게 될지 모르는 큰 병이다. 중독자와 그 가족들은 ‘정직성 회복’으로 자신들의 문제를 병으로 인정하고 도움을 구하는 용기를 가져야 하며 이웃과 사회에서는 이들이 건전한 수치심을 갖고 회복할 수 있도록 각종 지원과 이해로 그들의 회복 동기의식을 고취해 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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