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 속 한국문화 지키기

2001-03-1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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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영창<언론인>

소수민족 중에서 정체성이 가장 확실하게 교육된 민족으로 유대인이 꼽히며 아시아 인종으로는 일본인이 거론된다. 유대인들은 근래 혼혈결혼이 늘어나면서 정체성 유지에 한때 혼란을 겪었으나 다시 안정세를 되찾았다 한다. 최근의 한 보고서는 유대인과 타인종이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면 그 가정이 유대문화를 따르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라며 유대문화가 타인종의 문화보다 우세하기 때문에 이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우세한 문화가 열세한 문화를 포용하는 것은 문화의 융합이나 충돌과정에서 드러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또 일본인이 다른 아시안들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룰 경우 일본문화가 타문화를 압도한다고 한다. 역시 일본문화의 우세성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두고 한 연구자는 유대인과 일본인이 가정을 이루었을 경우를 조사했는데 여기서는 두 문화의 양립현상이 보였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일반적인 가정의례는 유대식을 따르고 일요일날에는 일본인 교회에 나가서 다양한 일본 전통문화를 접하고 2세들에게 일본문화 학습에 참여토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한인사회와 한인문화를 생각해 본다.

얼마전 메릴랜드의 한 공원에서 한국 전통 혼례식이 치러져 많은 세인들의 눈길을 끌었다고 한다. 미국 속에서 한국 전통문화가 선을 보인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이제 한인 이민문화가 미국 땅에 서서히 뿌리를 내리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흐뭇하다.


특히 이날 전통 혼례식의 주인공들인 신랑 신부가 각각 한국 남자와 백인 여자, 한국 여자와 흑인 남자였다니 그 의의는 더욱 크다 하겠다. 많은 1세들은 자녀들이 동족과 결혼하기를 바라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타인종과의 결혼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따라서 한인들도 점차 혼혈가계로 변모될 것이다. 현재 미국 전체 인구의 3분의2가 혼혈가계이고 이같은 현상은 미국사회의 흐름으로 볼 때 가속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류 속에서 코리안 아메리칸의 정체성은 어떻게 유지될 것이며 우리의 미래는 어떤가. 유대인과 한국인이 또는 한국인과 일본인이 가정을 이루면 한국문화는 어떻게 될까. 미국인과 결혼한 한국인들의 가정문화는 어떤가. 이들 가정에서 한국문화의 우세성을 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한다. 이 말은 이들 문화에 대해 한국 문화의 우수성이니 독특성이 떨어진다는 뜻이 아니고 우리 문화가 이들 문화에 비해 아직 미국 속에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했다는 풀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우리 문화의 열세성이 계속된다면 미국 속에서 우리 문화는 점차 쇠락의 길을 걷다가 종국에는 사라질 운명에 처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미국 속의 한인문화란 한국의 전통문화를 그대로 껴안는 것이 아니라 한국 전통문화가 동포들의 생활 속에 스며든 코리안 아메리칸식의 새로운 문화형태를 일컫는다. 미국문화와 한국문화가 미국 땅에서 만나면서 나타난 새로운 형태의 문화 창출이 바로 이민문화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 땅에서 우리 문화를 보존, 문화의 우세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후세들에게 한글과 역사(한국사 한인 이민사 한국 전통문화)를 가르치는 것이다.

한인사회는 교회 중심의 사회요, 교회에 인재와 경제력이 집중됐다는 데에 이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개교회 위주의 성장 일변도로만 달려왔던 한인교회도 이제 후세의 교육에 관심을 기울이고 한국 전통문화와 화해에 나서야 할 때다. 여기에 한인교회는 물론 한인사회의 미래가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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