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북미관계 언제 풀리려나

2001-03-1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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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영일<국제전략화해연구소 소장>

김대중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 정상은 원론적인 면에서 대북 포용 정책의 방향에 관해 합의하였다. 그러나 대북 포용정책의 속도에 관해서는 의견을 달리했다. 김 대통령은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관여정책을 부시 대통령이 지속하기를 제시한 반면에 부시 대통령은 북미간에 지금까지 합의된 내용들의 투명성이 검증된 이후에야 북미협상이 시작될 수 있다는 유보적인 입장을 제시했다.

향후 미국의 대북정책 집행‘속도’의 주요 3변수는 워싱턴과 한반도와 베이징이다. 첫째로,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미의회 민주당 측의 집요한 대북 포용정책의 요구와, 클린턴 행정부에서 주도한 대북 포용정책의 실효성의 증거들을 미국의 진보적인 싱크탱크들이 어느 정도 설득력있게 현 행정부의 대북 정책팀에 영향을 주느냐에 달려있다. 여름까지는 정책적인 물밑 전쟁이 공화와 민주, 보수와 진보 사이에 치열하게 일어날 것이다.

대북 경제제재 정책 분야에서는 의외로 북미 간의 경제교류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전면적인 대북 경제제재 해제 정책’이 나올 수도 있다. 비교적 진보적인 브루킹스 연구소의 리차드 하스 외교정책연구실장이 얼마 전에 백악관의 외교정책조정실장으로 발탁되었다. 하스가 백악관에 들어선 이후, 이라크에 관한 미국의 경제 제재가 느슨해지는 증거가 나타나고 있다. 정권에 대해서는 제재를 하되, 일반적인 경제교류는 오히려 활발하게 하고자 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북한에 대해서도 비슷한 조치가 예상이 된다. 대북 정책의 기조가 모두 완성된 후 이번 가을 정도부터는 가시적인 북미 경제교류가 드러날 수 있다고 본다.

둘째로 남북한이 동시에 미국의 대북 관여정책의 속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으로 이어지는 남북한 2차 정상회담이다. 서울의 희망은 이번 5월에 김위원장이 답방하여 적어도 남북한 평화선언이나 평화협정을 맺는 것이다. 평양은 아직 공식적인 답변을 하지 않은 상태다. 서울 언론은 답방 시기를 무리하게 여론화시킴으로써 평 정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평양에 맡길 결정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김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한반도의 화해와 동북아시아의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보는 데에 김 대통령과 뜻을 같이 하였다. 미국의 대표적인 외교정책연구소들은 보수와 진보를 떠나서, 결국 한반도의 문제는 남북한의 의지에 달려있고, 남북한 국민의 뜻에 달려있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도 그 공감대를 표시하였다. 서울은 여야와 진보와 보수의 벽을 넘어서서 민족의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2차 남북정상회담의 분위기를 조성하여야 한다고 본다. 미국이 국익을 앞세운다면 한반도의 시민들도 한반도 전체의 국익을 앞세워야 한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대북 정책의 속도를 조절하는 절대적인 대외적 요소는 중미 관계이다. 사실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은 중미 관계라는 지렛대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소련의 몰락 후 미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유일한 세계 강국이다. 그러나 2040년경에는 중국이 미국과 함께 국제정치의 양대 산맥으로 자리를 잡으리라는 것이 미국 미래정책 분석가들의 예측이다. 오히려 40년 후에는 인구에 근거한 중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미국을 앞설 수도 있다. 미국은 이러한 위협적인 사회주의 중국과 밀접한 통일 코리아를 원치 않는다. 중국 역시 자본주의 미국의 국익을 공유하는 통일 코리아를 바로 코 앞에 두기를 원치 않는다.

부시행정부는 대북 정책을 확정하기 전에 대중 정책의 기조를 먼저 세울 것이다. 클린턴 정부는 중국을 ‘전략적인 동반자’로서 인식하였다. 반면에 부시 외교 정책팀은 중국을 ‘전략적인 경쟁자’로 보고 있다. 이러한 중미 관계 인식의 변화에 기초해서 이번 여름까지 워싱턴이 어떠한 대중 정책을 제시하는지 주시해야 할 것이다. 워싱턴의 대베이징 정책은 대평양 정책의 전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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