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람을 알아 가는 일

2001-03-1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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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희<샌프란시스코>

사람이 자신이 늙어 가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으로 여러 가지 일들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증상이 싫증을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무슨 일에든지 별로 신이 나질 않고, 또 어떠한 것에도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감정들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아직은 살아가는 일이 꿈꾸어 볼만하고, 기다려 볼만하고 애써 볼만한 일이라 생각되었고, 사람들과의 만남이 소중하게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민하게 감지되는 어느 날의 피로에서 육체의 신호를 듣게되듯 어느 날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유달리 더 허탈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날을 계기로 왠지 휩싸여 사는 듯한 생활로부터 벗어나고픈 생각이 들었고, 그 후로는 그저 시간을 빼앗겨야 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늘리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어차피 생은 일인분의 고독과, 일인분의 평화, 일인분의 비밀과, 일인분의 침묵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난 주말, 친구와 카멜엘 다녀왔다.

눈부시도록 하얀 모래사장에 끝없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를 바라보며, 모처럼 허물없이 시간의 문을 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동안 마음속에 접혀있던 주름이 확 펴지는 것을 느꼈다. 양어깨에 사뿐히 내려앉는 위안을 느꼈다.

즐거우나 뜻깊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인간관계가, 때론 위안이 되지만 진정한 행복감을 전해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던 사람과의 만남이 다시 특별하게 생각되어지기 시작했다.

아름답게 저무는 바닷가를 뒤로한 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진정으로 사람이 사람을 알아 가는 과정은 놀랄 만큼 따뜻하구나,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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