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너무 메마르게 사는 우리

2001-03-1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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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호<글렌데일>

지난 일요일 LA마라톤에 나가 로스앤젤레스의 곳곳을 뛰었다. 여러 인종들과 어울려 내가 사는 도시의 중요 지점을 직접 뛴다는 것과 나의 한계에 도전한다는 것이 내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하지만 그런 기분도 잠시, 한 10마일 되어서 서서히 숨이 가쁘고 다리가 아파올 무렵 난 눈에 익은 한인타운에 다다르게 되었다. 내가 밥을 사먹고 자주 다니는 거리, 나의 본거지에 온 것에 힘이 나서 다시 열심히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인회관 앞을 지나고 웨스턴과 8가길을 뛸때도 한인들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영사관을 지나 윌셔길을 다 지나도록 인도에 나와 응원을 하는 한인은 찾기가 쉽지 않았다.

42.195Km를 완주하면서 각 지역을 지나칠 때 오렌지, 바나나, 그리고 여러 가지 음료수를 주면서 참가자들을 격려하고 박수를 쳐주는 모습을 계속 보아왔는데 유독 한인타운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멕시칸 동네를 지닐 때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수십 박스의 오렌지를 잘라 주면서 힘내라고 격려해주던 멕시칸 주민들, 그리고 크렌셔길을 달릴 때 빵을 던져주며 웃어주던 흑인 아저씨들, 난 완주를 하고 나서 그들에게 너무나 감사했다. 그리고 그들을 좀더 좋은 감정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한인회관 앞에서 우리 타운을 알리고, 영사관앞에서 한국과 내년에 열리는 월드컵에 대하여 수만명의 출전자들과 TV로 시청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을 아쉬워하는 것만은 아니다. 내가 우리 타운과 LA의 곳곳을 뛰면서 참으로 가슴 아팠던 것은 나와 상관없다고 느끼는 일에는 철저하게 외면하는 우리의 메마름이었다. 나와 우리의 일에만 관심이 있고 그것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남의 일이라 치부하는 우리의 메마른 이기심. 이런 이기심이 어쩌면 우리가 주류사회와 단절된채 살아가는 이유인 것 같았다.

LA에서 열리는 가장 큰 행사인 이 마라톤 대회 때문에 도리어 길을 막아 불편하고 매상이 떨어진다고 화를 내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도 다인종 사회인 이 미국에서 더불어 어울려 사는 여유를 우리 모두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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