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호루라기 불기

2001-03-0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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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성규<칼스테이트 샌버나디노, 회계학 교수>

요즘 미국 학계에서는 윤리와 관련하여 ‘호루라기 불기’(whistle blowing)라는 주제로 많은 논문이 발표되어지고 있다. 언제 호루라기를 부는가? 잘못된 것을 볼 때 호루라기를 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호루라기 불기’는 결국 양심의 외침이다. 그러나 참된 호루라기를 부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고난이 따르게 된다. 한국의 독재정부 시절에, ‘호루라기 불기’를 한 많은 사람들이 끔찍한 고문을 당한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그들의 희생이 초석이 되어 현재 한국에서는 그나마 미숙한 민주주의라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신년 초에 공동회의나 제직회 등에 참여하여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사회자가 여러 안건을 말한 뒤에 여러분 ‘가’ 하시면 ‘네’ 하십시오 라고 말하면, 대다수의 회중들은 내용을 확실히 알지도 못하면서 자동적으로 ‘예’ 하고 대답한다. 그렇게 대답하는 교인들은 그러한 행동이 교회를 은혜스럽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교인들에게 확실한 내용도 알 기회를 주지 않는 한인교회의 관행도 문제이지만, 교인 스스로도 어떤 내용에 대해 자신들이 "네"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고 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다. 이러니 교회가 바로 설 수가 없다.

최근 신문, 방송을 통하여 클린턴 전 대통령이 사면에 관련된 구설수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을 안다. 많은 시민과 조직들이 잘못된 사면에 대하여 호루라기를 불 때, 다음 대통령들은 당연히 바른 사면을 위하여 노력하게 되고 국가가 바로 서게 되는 것이다.


옛날 동화에 나온 이야기이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는데 많은 신하들이 은혜스러운(?) 이야기만 하기 좋아하여, 임금님 옷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말하니 이에 판단력이 혼돈된 임금님은 그러한 모습으로 바깥 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마침내 어린아이 하나가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소리쳤을 때, 그때서야 임금님은 자신이 옷을 입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필자는 한인교회에서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그 동화가 생각난다. 무슨 은혜와 사랑이 그렇게 넘쳐흐르는지 말끝마다 사랑, 용서, 감사가 따른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이렇게 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용서하여야 할 입장에 서면 결코 용서치 않는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하여야 한다.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주신 명령이다.

얼마전 남가주 기독교 교회협의회의 책임자가 한 발언이 생각난다. 후임자가 협의회의 남은 예산을 이월시켜 줄 것을 요구하였을 때, 그 책임자는 이때까지 관행으로 이월시켜 준 사례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필자의 상상을 초월하는 기발한(?) 답변이었다. 협의회의 예산도 분명히 교인들의 피땀어린 헌금일텐데, 부패한 정치인들이 대답하기 곤란할 때나 사용하는 ‘관행’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니 한심한 생각이 든다. 이러한 잘못된 관행을 고치기 위하여 교인들은 호루라기를 힘차게 불어야 한다. 잘못된 것은 고치면서 용서와 사랑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의 ‘호루라기 불기’는 어떠하였는가? 천국이 가까웠으니 회개하라고 말씀하였을 때 십자가상의 고통이 따랐으나 그 죽음을 이기고, 복음의 씨앗이 만방에 전하여지게 되었다. 기독교인들도 말로만 감사, 사랑, 용서는 그만하고 조용히 실천하면서, 바른 소리를 외쳐야 할 것이다. 즉 어린아이와 같이 임금님이 벌거벗었으면 벌거벗었다고 말을 하여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호루라기 불기’를 따르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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