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혹한 형벌

2001-03-0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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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주영 <본보 뉴욕지사 논설위원>

얼마 전 콜택시 기사를 권총으로 살해해 종신형을 받은 두 명의 한인 청소년에 대한 선고 결과는 자식을 가진 부모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들이 그토록 가혹한 형벌을 받게 됐나’ ‘무엇이 대체 이들을 이 지경이 되도록 만들었나’ ‘이들이 이렇게 될 때까지 어른들은 도대체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나’ 엄밀히 따지면 이들은 아직도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로 잘못이 있다면 그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이 사회와 어른들의 책임이다.

보도된 바와 같이 당시 사건에 연루된 아이들은 하나같이 이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만한 아이들이 아니었다. 이들은 평소 주위의 어른이나 부모에게도 매우 인사성이 밝은, 그리고 착한 심성을 지닌 아이들이었다. 특히 콜택시 기사를 살해한 청소년은 그 중에서도 제일 착한 성품의 소유자로 어느 누구도 그가 그런 짓을 저지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아이였다.

그런 아이들이 이런 사건을 저지른 걸 보면 그들의 마음속은 이미 부모들이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폭발적인 상태에 놓여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미 선을 넘을 대로 넘어선 상태가 아니고서는 그렇게 끔찍한 사건을 저지를 리 만무하다. 사회와 가정, 그리고 자신들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어른들에 대한 실망감, 좌절감, 분노들 뿐으로 그들의 의식 속에는 분명한 자기 정체성이 결여된 상태였던 것으로 감지된다. 이는 분명 ‘내가 누구인가’ 하는 바른 자세와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어른들이 평소 심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청소년 전문가에 따르면 요즘 한인 청소년의 현실은 자신에게 닥쳐오는 모든 문제들을 상상외로 쉽게 좌절하고 포기한다는 이야기다. 이들은 될수록 쉽고 안일한 사고에 익숙해 있는데 전문가의 이야기는 이것이 바로 청소년 문제의 근원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갓 이민 와 문화나 언어가 부족한 학생은 물론, 현지에서 태어나 문제가 없는 학생이라 할지라도 사춘기가 있기 때문에 청소년의 탈선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요즘 한인 청소년들은 갈수록 쉽고 즐거운 일에만 탐닉할 생각을 하고 있고 저항력을 기르려는 노력이나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한다. 심지어 주위에서 도움을 주려해도 너무나 안일함에 젖어있어 이를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있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을 귀찮게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위 개인주의나 이기주의의 팽창이라고나 해야 할까. 도움을 주려하면 자기 인생에 대한 극복이나 삶을 증강시키려는 노력보다 오히려 ‘귀찮다’ 생각한다. 그리고는 결코 도움을 줄 수 없는 같은 입장의 저항감이 없는 또래 친구들의 이야기만 들으려고 한다.

좋은 교사나 주위 어른들의 조언은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쉽게 포기하고 학교 대신 노래방이나 카페, 당구장 등을 전전한다. 아무리 순진하고 착한 아이들이라도 이런 식으로 자신도 모르게 한 발 한 발 탈선의 길로 접어든다. 어느 부모도 내 아이가 그렇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한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일이 한인 청소년사회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가정이나 사회에서 철저히 보호대상이 되는 어린이와 달리 ‘이제는 컸으니까’ 하며 가정이나 사회에서 어른도, 어린이도 아닌 애매 모호한 입장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혼란을 느껴야 하는 한인 청소년들. ‘다른 애들은 다 잘하는데 너는 왜 못하느냐’ ‘나는 먹을 것이 없을 때도 잘했는데 너는 무엇 때문에 먹을 것 풍족하고 해줄 것 다 해주는데도 그 모양, 그 꼴이냐’ 어른들의 성화와 질책에 자녀들은 질식한다.

세대가 복잡해질수록 이들의 아픔이나 상처는 단순하지가 않다. 사회적으로도 술, 담배를 팔며 노래방, 당구장 같은 곳에서 밤새도록 놀게 하고 그것도 모자라 퇴폐장소에 취직까지 시키는 어른들의 타락된 상혼에 어린이보다도 더 보호받아야 할 청소년의 가슴은 멍들대로 멍든다.

가정이나 사회는 이런 10대들의 아픔을 진실로 수용하고 품어줌으로써 그들을 더욱 건전하고 튼튼하게 만드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하지 않을까. 이 사건을 계기로 청소년들 사이에서 이런 끔찍한 사건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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