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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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물지 않는 상처

2001-03-0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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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성락 <사회부 차장대우>

95년 11월9일 린다 박양이 집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간 것은 다음날 아침. 주요 언론사들이 현장에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굳게 닫혀 있던 박양의 집 현관문이 열리고 초췌한 모습의 여인이 나와 "인터뷰를 할 수 없다"며 다시 문을 닫았다. 박양의 어머니 박동실씨와의 첫 대면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후 박씨는 딸이 쓰던 방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남겨 놓았다. 린다가 사용하던 침대는 물론 모든 물건을 있던 그 자리에 그대로 놓아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방안을 청소하며 벽에 걸린 린다의 사진을 바라보곤 했다. 기분이 우울한 날이면 린다의 침대에서 잠을 자기도 했고 아버지 박선화씨도 마찬가지였다. 애지중지 하던 딸이 살해된 것에 대한 분노와 충격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 마음의 평안과 위로를 얻었지만 완전한 탈출구는 되지 못했다.

사건 발생 2년여 뒤 집에서 식사나 함께 하자는 박선화씨의 초청으로 그 집을 찾았다. 그 때도 린다 방은 그대로 간직돼 있었다. 다만 그동안 변한 것이 있다면 박씨 부부가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다니며 위로하고 슬픔을 함께 하는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는 것과 딸이 없어진 공간을 메우기 위해 작은 강아지 한 마리를 집안에서 키우기 시작했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슬픔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다시 3년이 흐른 지난 1일 오전 박선화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박씨는 담담한 어조로 "아침에 수사관들이 다녀갔어. 범인들을 잡았다며 사진을 보여주더군. 정신이 혼란해져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아"라고 전했다. 얼마 뒤 어바인 경찰은 용의자 두 명을 체포해 살인, 강도, 절도 등의 혐의로 체포해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그 날 오후 박씨 부부와의 인터뷰를 위해 오랜만에 그 집을 찾았고 박씨와 얘기를 나누던 중 부인 동실씨가 귀가했다. 동실씨는 거실 탁자에 놓여 있는 용의자들의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아침에 수사관들이 방문했을 때 이를 보지 못했던 것 같았다.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늦은 것 같아 "이 사람들이 경찰이 발표한 용의자들입니다"라고 설명했다.

박씨 부부는 "용의자들을 잡은 것은 다행이지만 그것이 이미 세상을 떠난 딸과 깊은 상처를 안고 지난 5년을 살아 온 우리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그동안 억눌러 왔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음을 감추지 못했다.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으로만 생각됐던 사건이 경찰의 끈질긴 노력으로 5년여만에 해결됐지만 그동안 유가족이 겪어야 했던 정신적 피해는 앞으로도 보상받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 지난 90년 1월 이후 남가주에서 발생한 140여건의 한인 관련 살인사건 가운데 절반 정도가 미제인 점을 감안하면 우리 주위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 살고 있음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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