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이 중간에 서야 한다

2001-03-0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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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시각

▶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워싱턴포스트 기고)

김대중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은 아주 적절한 시기에 이루어졌다. 지난 한세기간 아시아 위기의 초점이 되어왔던 한국이 새롭고 또 보다 안정된 아시아의 질서형성에 중추적 역할을 할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클린턴 대통령 말기 한반도는 급작스러운 해빙을 맞게됐다. 한국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고 북한의 제 2인자 조명록 차수가 워싱턴을 방문해 클린턴대통령을 만났다. 또 미국의 국무장관이 답례로 평양을 방문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임기말에 평양을 방문할 계획까지 마련했으나 북한측이 워싱턴이 제시한 조건에 응답하지 않음으로써 그 계획은 무산되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은 그러면 근본적 변화의 예고인가, 아니면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계획 전복등을 노린 새로운 일련의 책략에 불과한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해답을 찾아내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본다. 한국의 장래는 물론이고 서태평양지역에서 미국의 전체적 입지도 바로 그 해답을 찾아내는 데 달려 있기 때문이다.


지난 50년간 한국이 민주국가로 발전 산업국가로 발돋움 해온 반면 북한은 스탈린식 독재체제를 고수해왔다. 인터넷 시대를 맞아서도 평양은 국민을 바깥 세계와 단절시켜왔다. 경제는 파탄이 났고 농업생산 기반은 완전히 붕괴, 대기근이 휩쓸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북한은 국민생산의 상당 부문을 군사적 목적에 배정함으로써 엄청난 화력을 지닌 탱크 및 포부대를 육성, 그 포문은 서울을 향하고 있다. 북한은 또 미국에 적대적인 국가들에게 미사일을 판매함으로써 외화를 획득해왔다.

북한의 장기적 목표는 전쟁이 아니었다. 이른바 ‘통미봉남’정책이 장기적 목표였다. 한반도 장래에 대해 미국과 직접 대화를 함으로써 한국을 고립시킨다는 목표였다. 이 정책은 잠정적으로나마 성공하는 듯 보였다. 1994년 미국은 북한과 별도로 협상을 벌여 제네바협정을 맺었다. 이 협정은 핵확산을 막는데는 일조를 했으나 부정적 효과도 가져왔다. 다른 깡패국가들에게 핵무기개발 계획에 착수하면 미국이 돈으로 매수해 이를 막는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 것이다.

북한이 제네바협정을 맺은지 얼마후 장거리 미사일을 시험 발사함에따라 문제는 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됐다. 미국은 미사일 개발문제를 둘러싸고 평양측과 재차 협상을 벌였고 북한이 미사일개발을 보류하는 대신 미국이 그 대가를 지불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협상이었다. 클린턴 대통령의 평양방문 계획도 말하자면 그 대가에 포한됐던 것이다.

북한과의 협상을 통해 얻어낸 것은 플류토늄 생산보류다. 그러나 서울을 배제하고 워싱턴과 평양이 직접 대화를 통해 한국의 장래를 결정할 수도 있다는 시사가 그 대가였다. 두가지 사태가 그러나 이같은 흐름을 막았다. 그 첫 번째는 김일성의 사망이다. 두 번째는 김대중 대통령정부 출범이다. 이른바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과의 교류를 확대함으로써 한국정부는 북한접촉에 있어 미국과 균형을 유지하게 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은 한미양국의 전략을 함께 조율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양국의 공통 전략에는 두가지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하나는 한반도 안정에 열쇠가 되는 것은 한미양국의 굳건한 동맹관계이지 북한과의 친선관계가 아니라는 원칙이다. 남북한간의 협상에 있어서는 한국이 주도역할을 해야 하고 서울을 통해서만 워싱턴과의 관계개선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북한측에 심어주어야 한다는 게 두 번째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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