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사람에 관한 고약한 농담

2001-03-06 (화)
크게 작게

▶ 크리스 포먼 <샌프란시스코주립대 교수>

얼마 전, 강의가 시작되기 전에 학생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화제가 한국에 관한 이야기로 바뀌었다. 마커스라는 남자 학생이 나의 한국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고 말하면서, 자기도 일본에서 몇 년 살았으며, 일본말도 어느 정도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몰라요. 그러나 한국사람 조크를 하나 알고 있지요" 하면서 웃는 폼이 수상하였지만, "오케이, 무슨 농담인데 한번 해봐라" 하고 나는 마커스에게 말했다. “한국말로 ‘엑스큐스미(excuse me)’를 무엇이라고 합니까” 하고 그는 물었다. 나는 웃으면서 “미안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아니라고 하였다. 그의 반응에 의아해 하는 나를, 마커스는 말없이 빤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얼마동안 침묵이 지속된 후 나는 그의 농담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오케이, 모르겠다. 한국말로 ‘엑스큐스미’를 뭐라고 말하니?" 하고 포기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마커스는 말을 하지 않고, 무뚝뚝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다가와서 그의 어깨로 나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그리고 나서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한국사람과 부딪쳤을 때 한국사람이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전혀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간다는 농담의 뜻을 깨닫기까지 몇 초가 걸렸다. 농담의 함축된 의미는 한국사람들이 예의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한국사람들이 그렇지 않다.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하고 정색하며 나는 그에게 물었다. "마커스, 너의 집에서 너의 엄마를 스치고 지나갈 때 너는 일일이 사과하느냐?" 하며 한국사람을 격렬하게 대변하는 나의 태도에 마커스는 표정을 바꾸면서 "농담이에요" 하고 머리를 긁적거리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클래스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커스의 농담을 생각해 보았다. 마커스의 농담처럼 한국사람에 대한 미국사람들의 인상이 이럴까 하는 의아심이 생겼다. 머릿속에서 마커스와 계속 대화를 하면서 운전하였다.

"한국사람들의 가치관과 미국사람들의 가치관이 다르다. 미국사람은 예의가 바르고 한국사람은 예의가 없다고 할 수 없다. 한국사람이 예의가 바르다는 것과 우리가 생각하는 예의가 다를 뿐이다. 한국사람들은 관계에 중요성을 두고 있다. 한국아이들이 생전 처음 보는 남자를 "아저씨"라고 부르는가 하면 나이가 많은 여자에게 "할머니"라고 부르는 것처럼, 이와 같은 예의를 미국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불편한 감정을 일으키지 않는가. 한국사람들과 미국사람들과의 공간 관념은 다르다. 한국에 있었을 때 공중목욕탕에 처음 갔을 때 낯설고 불편한 기분을 마커스에게 설명하였다. 낯선 사람들과 목욕도 함께 하는 문화 속에서 길거리에서 스치는 것이 별로 문제가 될 리도 없을 것이다” 하고 머릿속으로 대화를 계속하였다.

미국사람들이 ‘사적인 공간’(personal space)에 지나칠 정도로 신경을 쓴다. 허락 없이 상대를 만지는 것은 금물이다. 서로 대화할 때 코와 코 사이가 14인치 정도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이야기하게 되면 사적인 공간을 침범 당했다고 생각하여 매우 불쾌하게 생각한다. 처음 한국에 온 미국사람들이 놀라워하는 것 중의 하나가 길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손을 잡고 다니는 모습이다. "동성연애자?" 하면서 신경을 곤두세우기도 한다.

이처럼 접촉을 민감하게 생각하는 미국인들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친구들끼리 서로 손잡고 팔짱을 끼는 것이 무엇이 이상한가 말이다. 수천년 동안 인류는 그렇게 살아왔지 않는가? 서로 옷깃을 스치게 되는 것이 무슨 큰 잘못이라고 용서를 빌어야 하는가. 친한 친구와 팔짱을 끼고 걷는 것이 얼마나 인간다우며 따뜻한가. 언어로서 전달할 수 없는 우정을 접촉을 통해 나누는 것이 왜 이상한가.

"미국에서 따뜻한 인간적인 관계가 상실되었다"고 나는 마커스에게 말해주고 싶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