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인 사회의 불가사의

2001-03-0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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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일이라는 게 원래 알다가도 모를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LA한인 사회와 관련된 일들이 그렇다. 그야말로 ‘불가사의’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인 인구가 우선 그렇다. 20여년전 한인 이민 러시가 한창일 때 LA일원의 한인 인구는 통칭 30여만이었다. 그 30여만이라는 숫자는 십수년간 변함이 없이 통용돼 왔다. 어느날 느닷없이 그 수치는 50여만으로 바뀌더니 요즘은 60만이다. 한인 인구는 도대체 얼마일까.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의 말만 들어보면 한인 타운은 20년래 줄곧 불황이었다. 장사가 잘된다는 말을 하는 적이 결코 없어서다.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에나 경기가 좀 있었다는 푸념이다. 다운 타운 옷장사, 리커, 마켓, 세탁소 한인 주력업종 종사자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그런데 한인 은행들의 연간 보고서는 좀처럼 하향곡선을 보인 적이 없다. 예금고도 늘고 대출도 늘어만 왔다. 비즈니스 종사자들은 경기가 바닥이라고 하는데 은행 장사는 줄곧 상향세다. 이 역시 불가사의라고 할 수밖에.

불가사의중 불가사의는 뭐니뭐니해도 좀처럼 변할 줄 모르는 한인 단체장들의 한결 같은 의식구조다. 세상이 변하고, 변해 디지틀시대가 됐고 또 한국도 군사정권에서 국민의 정부로 바꼈지만 20여년 전이나, 요즈음이나 전혀 요지부동이다. 이 점에서 자못 경탄의 감을 불러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솔직히 말해 아무 아무 단체장이라는 명함이라도 들고 있어야 사람들이 알아 준다. 타이틀을 가지고 있어야 리셉션에 오라는 청첩장이라도 날라와서다" 퍽 오래전 올드 타이머 단체장이 한 이야기다. 이 말을 정리하면 이렇게 풀이되는 것 같다. "대부분 한인 단체들은 봉사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로 돼있다. 그러나 봉사는 뒷전이고 얼굴내기에 주력하는 경향이다"

이 얼굴내기는 한인 사회의 묘한 전통으로 굳어진 느낌이다. 본국의 실력자 간담회가 열렸다 하면 언제나 만원이다. 일부 단체장이 이런 간담회 초청 대상에서 빠지면 난리다. 또 이름 내는 행사에는 고문이다, 명예회장단이다, 회장단이다, 그 참가자 이름이 휘황찬란하다. 그러나 뒷탈이 나는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리고 보면 요즘 타운서의 해프닝, 즉 한인회가 왜 뒤늦게 월드컵 후원회 문제에 끼어들었고 또 타운이 시끄러운지도 쉽사리 이해된다. 얼핏보기에는 복잡해 보이지만 한인 단체로서 모름지기 지켜야 할 전통에 충실하고자 하는 사명의식이 발동된 결과로 보면 간단하다는 생각이다. 얼굴내기의 전통이다. 월드컴 후원이라는 영광된 일에서 빠져서는 체면이 말씀이 아니라는 자각과 함께 말이다.

한인 타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중 불가사의한 일이 어찌 이뿐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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