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중요한 것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2001-03-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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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균희

이산가족 상봉의 장면을 보여주면서 해설자가 강조하던 부분이 있었다. 몇십년동안 헤어졌던 부모형제들이 만나면서도 갑자기 발작이라도 하듯이 "김정일장군의 지도력으로 우리가 이렇게 만난다"고 되뇌인다는 것이다. 이 해설자의 의도는 ‘북한사회의 경직성을 강조하고 우리의 자본민주주의의 우월성’을 표현하고자 했으리라. 아니면 무의식속에 숨어있는 자신의 심중, "바로 이런 이유로 통일이 힘들다"는 통일 반대의지를 표현하려는 기도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기득권층에서는 통일을 그다지 갈망하지 않는 것 같다고 들어왔다. 지금도 잘 살고 있는데 변화를 가해보아야 기득권을 잃어버린 위험부담 내지는 적어도 통일 부담금조로 세금이나 더 많이 내어야 한다는 점에 식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일부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혹은 기득권층을 중심으로 통일 반대운동도 불사하는 것 같다. 김정일 답방 반대 서명운동도 펴고있었고, 자본민주주의가 아닌 통일은 반대한다는 식의 꼬리표가 붙은 통일반대를 표평하는 이도 있는 것 같다. 적어도 ‘우리도 살기 힘든데 왜 이북에 돈을 보내주는냐’는 논리는 많은 공감을 받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런 때 이루어진 3차 이산가족상봉석상에서 발작하듯이 외치는 김정일장군 찬양과 체제찬양의 모습에 공감이 갈리는 만무하다. 우리도 같이 자본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 강조나 김대중대통령의 노벨상수상 칭송으로 대응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들의 이런 모습을 비꼬아야 할 것인가? 어느 것도 우리들의 적절한 반응은 아닌 것 같다. 자고로 중요한 것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사랑하는 이 앞에서 오히려 사랑한다고 외치기가 힘들어지는 문화속에서 살아온 우리들이다. 더구나 큰소리로 외치는 일일수록 진실이 안닐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어두움이 무서운 아이들이 "엄마 난 안무서워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외치고, 제발이 저린 도적이 "난 안 훔쳤어"하며 시키지도 않는 고백을 하게 마련이다.


KAL기 승무원으로 일하다가 납북된 딸을 만나는 장면을 라디오 talk show 시간에 다루던 모 해설가는 "그녀가 왜 이북에 머무르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어머니에게 말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안타까와 하고 있었다. 그러나 딸을 만나서 얼싸안고 우는 어머니가 왜 그런 것에 신경을 쓸것인가? 사위와 장성한 외손녀 외손주까지도 동석해 있는 마당에 왜 그런 질문을 늘어 놓아야하는지? 말보다도 더 진한 눈물과 모녀상면의 포옹의 장면을 보고도 "왜 그녀가 이북에 그대로 눌러앉아서 결혼을 하고 두자녀를 가졌어야 했는지?"란 얄팍한 질문을 던져보고 싶은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요한 것은 말로 하지 않는다. 말로 할 수도 할 필요도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소리쳐 외쳐대는 것은 중요하지 않은 것, 혹은 심중에 없는 것일 가능성이 많다는 점도 이해해야한다. 이렇게 가식으로라도 외쳐대야하는 이북의 동포들의 모습을 애련히 생각한다면, 하루 빨리 통일을 성취 하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 이번 이산가족상봉을 통해서 배울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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