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일본 대기업들은 징용 배상금 지급하라

2001-03-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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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에 의해 강제로 끌려갔던 한인 징용 및 위안부 피해자들의 피해를 배상 받기 위한 소송이 3·1절 82주년을 전후해 LA에서 제기된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권오헌씨를 비롯 미주지역 징용피해자 및 유족들로 구성된 ‘2차 대전 피해 배상청구 한인연합회’가 제기한 이번 소송은 ‘재미 일본군 위안부-징용 배상 추진위원회’등 단체의 후원을 받고 있고 5명의 한인 변호사와 유대계 인권변호사, 독일 정부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벌였던 4개 미국 법률회사가 공동 소송대리인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 LA와 샌프란시스코, 시애틀등 곳곳에서 징용 피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이 제기되기는 했지만 이번처럼 조직적으로 배상 요구가 이뤄진 것은 처음인 것 같다.

해방 이후 일본에서 제2차 대전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나 기업을 상대로 여러 건의 소송을 벌여왔지만 제대로 배상을 받은 적은 거의 없다. 일본 재판부가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배상이 이미 이뤄졌다는 이유로 시종일관 원고 패소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배상 추진위원회가 LA에서 집단소송을 제기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가주는 1999년 ‘징용배상 특별법’을 제정, 나치와 그 동맹국에 의한 피해자들이 2010년까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길을 터놨다.

소송의 관건은 한·일 협정 체결로 피해보상이 마무리됐다는 일본측 주장을 뒤엎을 수 있는가에 달려 있는데 일방적으로 일본 편을 들던 일본 법원과는 달리 가주 법원은 객관적 입장에서 판결을 내릴 수 있어 일본에서 배상을 청구하는 것보다 한결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독일정부를 상대로 유대계 피해자들이 집단소송을 통해 총 52억 달러에 달하는 배상금을 받아낸 전례도 있어 승소 전망은 밝은 편이다. 이 소송에서 이길 경우 당사자뿐 아니라 한국에 거주하는 징용 및 위안부 피해자들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나치의 범죄에 대해 참회하고 이를 교과서에 집어넣어 후세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독일과는 대조적으로 일본은 지금까지 잘못을 시인하는데 인색함을 감추지 못해왔다. 유럽이 이제는 독일을 이웃나라로 받아들이고 있는 반면 아시아 각국은 아직도 일본을 의심스런 눈초리로 보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일본이 경제대국에 걸맞는 아시아의 정치적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갖추기 위해서는 과거의 만행에 대한 참회가 선행돼야 하며 징용 위안부들에 대한 배상은 그를 위한 첫 단계이다. 이번 소송에서 일본 기업들이 과거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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