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예방 가능한 ‘천재지변’

2001-03-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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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만 철<신경정신과 의사>

며칠 전 UC 산타바바라 학생을 포함한 20대 청년 4명을 현장에서 즉사케 하고 또 한명의 생명을 위독하게 한 끔찍하고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보도되었다. 문제의 학생은 주차된 9대의 차량을 박살낸 후 인파에 뛰어들어 5명 이상을 사상케 하고 대파된 차에서 뛰어나와 광란을 부리며 "나는 죽음의 천사"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이런 광경을 TV로 시청한 모든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였음은 물론이려니와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정신이상에 의한 행동으로 간주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우선 마약 복용으로 인한 정신착란 증상으로 볼 수 있다. 엑스터시나 PCP 같은 신경자극제 및 환각제를 복용함으로 환상이나 환청, 환시 그리고 망상에 사로잡혀 상식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된다.

약물에 의해서든 정신병으로 오든 정신착란의 행동은 개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나타나므로 천재지변과 같다고 볼 수 있고, 이것은 현대의학으로 치료가 가능한 것이므로 예방할 수 있는 천재지변이라고 할수 있다.


정신과 분야의 전문가로서 보면, 어쩌면 이 범인은 마약과는 전혀 관계없는 정신착란 증세로 인해 이 사고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가장 많이 발생하는 병명을 순서대로 본다면, 조울성 정신분열증, 착란성 조울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병에서 생기는 정신착란증의 증세를 살펴보면 과대 망상이나 종교 망상 내지는 아주 터무니없는 망상 속에 빠지는 수가 많으며 이상한 것을 보고 이상한 소리까지 들으며, 심한 경우에는 이 소리가 명령을 내려서 그대로 따라하는 수가 많다. 예를 들면 자기는 하나님이나 또는 어떤 우주인으로부터 계시를 받아서 특별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책임을 느끼며 가끔은 사람들, 심지어 부모마저도 마귀가 변형된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이들에게 싸움을 걸든지, 칼이나 총을 사용하여 폭력을 행사하는 수도 있다.

가끔 환청으로 인해서 그들은 또 다른 명령을 듣기도 하는데, 어떤 때는 자동차로 다른 차를 받아도 아무도 상하지 않으리라는 명령을 받고 사고를 내는가 하면, 빌딩에서 뛰어내리라는 소리를 듣고 정말로 뛰어내리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런 착란증세 때문에 갑작스러운 자살극이 일어나는 것도 드물지 않다. 이들의 행동은 늘 불안하고 심각하며 충동적이기 때문에,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쉽게 구별이 가능하다.

이와 같은 환자들을 돌보는 전문인의 한 사람으로 이런 종류의 사건을 볼 때마다 심정이 착잡하다. 왜냐하면 이런 증세가 있을 때에 빨리 치료를 해야 하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나 타인의 안전을 위해서 꼭 필요한데, 부모가 책임 있게 이런 문제를 고치려고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때가 있고, 부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호응하지 않을 때도 있기 때문에 아주 힘들다. 특히 18세 이후에는 본인 스스로 도움을 청하지 않는 한 거의 치료의 손길이 미칠 수 없다.

법적인 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심각한 정신이상에 의해서 저질러진 행동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벌을 받지 않게 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본인 자신이 하는 일이 나쁘다는 의식이 없을 때, 그리고 나쁘다는 생각이 있었더라도 자기의 해동을 억제할 능력이 없었을 때는 형사처벌을 할 수가 없다. 이런 병 때문에 스스로 피해자가 되는 범죄자도 측은하고, 이로 인해 이미 목숨을 잃은 젊은 넋과 그 유가족을 생각하면 아주 난감할 뿐이다.

이제 우리는 이런 잠재된 사고가 많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 사회 전체가 한 가족처럼 느끼며, 정신과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모두가 협력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문제를 숨기려 하지 말고, 가능한 모든 분야의 도움을 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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