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웨스트 LA의 로열 극장에서 상영중인 스웨덴 영화 ‘부정’(Faithless)에서 지휘자 남편을 둔 여주인공이 이런 말을 한다. "나의 남편은 나와의 섹스가 ‘봄의 제전’을 지휘하는 것보다 더 좋다고 말하지요."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The Rite of Spring)이 주는 감각적 쾌감을 아주 적절히 표현한 말이다. 그러나 ‘봄의 제전’을 듣는 느낌은 섹스의 희열이라기보다 차라리 감정이 겁탈 당하는 것 같은 폭력적 흥분이라고 해야 옳을 듯하다.
내가 어떤 사람이 ‘신의 현의 목격’이라고까지 표현한 이 음악을 처음 들은 것은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내가 자주 드나들던 종로에 있던 고전음악 감상실 르네상스에서였다. 그 때 첫 느낌은 새 하늘과 새 땅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것이었다. 그때까지 전연 느껴보지 못한 무언가 완전히 새로운 경험으로 후에 내가 LA로 이주한 뒤 뮤직센터에서 처음 메시앙의 음악을 들었을 때도 이와 비슷한 감동을 겪은 바 있다.
원시 이교도들의 대지와 봄에 대한 찬양 그리고 봄맞이를 위한 처녀의 희생을 그린 ‘봄의 제전’은 묵시록적 불협화음이요 원시적 리듬이 광란하는 오색찬란한 야수파 그림이다. 바순이 애틋하게 목가풍의 고음을 토해내면서 시작되는데 잠시 후 현들이 집합음을 내면서 법석을 떨 때면(히치콕의 ‘사이코’ 음악이 생각난다) 가슴은 두방망이질 치고 엉덩이가 들썩댈 정도로 흥분하게 된다. 이어 타악기가 리듬을 사정없이 구타하면서 음악은 원자폭탄 같은 폭발성 에너지를 감당 못해 이리 튀고 저리 튀어 달아난다.
나는 이 곡을 들을 때면 아프리카 식인종이 백인을 잡아 펄펄 끊는 가마솥에 집어넣고 흥분해 길길이 날뛰며 소리 지르고 춤추는 모습을 연상하곤 한다.
음악의 역사와 형태에 혁명을 일으킨 ‘봄의 제전’은 발레 뤼스 단장 디아길레프가 스트라빈스키에게 작곡을 의뢰한 발레곡으로 또 다른 발레곡 ‘불새’와 ‘페트루시카’와 함께 발레곡 3총사로 알려진 음악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봄의 제전’은 리듬을 해방시킨 ‘무절제’한 음악으로 이 리듬의 해방은 이 곡이 갖고 있는 모든 다른 음악적인 것을 삼켜버리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리듬의 해방은 또 듣는 사람에게는 영혼의 해방을 가져다 준다.
모든 새로운 것은 강력한 반발을 맞게 마련. 1913년 5월29일 피에르 몽토가 파리의 샹젤리제 극장에서 이 곡을 초연했을 때 객석에서 일어난 소동은 유명한 일화다. 곡을 즉석에서 수용한 열광자들과 혐오하는 사람들간에 고함과 함께 폭력전이 발생,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음악의 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LA필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1882~1971)의 사망 30주년을 맞아 오는 11일까지 스트라빈스키 축제를 진행한다. 요즘 라디오 FM 105.1(KMZT)을 틀면 LA필 상임지휘자인 에사-페카 살로넨이 이 축제를 선전하는 것을 자주 듣게 된다. 살로넨은 ‘로컬 보이’인 스트라빈스키와 혼연일체가 될 준비를 시작할 때가 됐다면서 호객행위를 한다.
살로넨의 말처럼 스트라빈스키는 앤젤리노다. 그는 1940년부터 근 30년 동안 할리웃서 살면서 점심때는 종종 화머스 마켓엘 들렀다고 한다. 스트라빈스키는 세인트 피터스버그 인근에서 태어나 러시아 혁명 이후 죽을 때까지 스위스, 파리, 미국 등지에서 망명자의 삶을 살았다. 망명자로서 남의 것과 색다른 것을 수용, 자기 것으로 만들었는데 그의 음악의 다양성도 여기서 유래한다는 해석이다.
국민 음악파인 림스키-코르사코프에 사사한 스트라빈스키는 생애 중반에는 신고전주의 풍의 음악을 그리고 후반기에는 동향인 쇤버그(둘은 모두 LA에 살았으면서도 한번도 안 만났다)의 12음 기법에 따른 음악을 작곡했다.
리듬의 작곡가라 불리는 스트라빈스키의 비일관적인 스타일. 그의 음악에 대한 귀가 짧은 내가 들어도 ‘에보니’ 협주곡과 ‘병사의 이야기’ 그리고 ‘시편’ 교향곡과 교향곡 in C가 모두 다르다.
리듬의 작곡가로 감정의 피부를 발라내 자극시키는 스트라빈스키는 명목상 현대 음악인이겠다. 그러나 나는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적한 대로 ‘숨어 있는 로맨틱’이라는 말에 더 공감한다.
LA필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과 또 다른 발레곡 ‘아곤’(Agon) 등은 3일(하오 8시)과 4일(하오 2시30분) 그리고 ‘불새’(Firebird)와 피아노와 관악기를 위한 협주곡(피아노 올리무스토넨 등)은 9일(하오 1시), 10일(하오 8시), 11일(하오 2시30분)에 각기 뮤직센터서 살로넨 지휘를 연주한다. (323)850-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