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이 선진국이 되려면

2001-03-01 (목)
크게 작게

▶ 김기옥<공인회계사>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지 3년이 지난 요즈음도 한국 정치권의 비생산적 싸움 양상을 보노라면 한국 정치문화의 선진화는 아직도 요원하다는 느낌이 든다. 국회는 영호남지역당으로 갈라져 지역감정만을 부추기며 국리민복은 아랑곳없이 상대당 흠집내기 편싸움에만 열중하고 있다. 이제 한국은 정치문화 뿐아니라, 경제, 사회, 교육, 언론 등 모든 분야에 걸쳐서 제도와 관행, 그리고 지도자들을 바꾸고 국민의식 개혁운동까지 펼쳐야할 때가 도래했다고 본다.

따지고 보면 한국의 지난 50년 헌정사는 일제가 36년 동안 심어놓은 군국주의 문화의 틀안에서 소수 엘리트집단이 국민들을 제멋대로 다루는 통치문화의 연속에 불과했다.

일제시대에 태어나서 그 시대의 교육을 받고 그 시대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각계각층의 지도자가 되어 그 시대의 법체계와 제도 그리고 관행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행세를 해왔으니 그럴수 밖에 없지 않은가? 국민들이 피와 땀으로 이룩해 낸 경제적 성과를 정경유착 뿐아니라 보수언론까지 합세하여 독식하는 바람에 계층간의 불균형이 심화되면서 공정성을 바탕으로 한 사회정의가 무너지고 한탕주의, 황금만능 풍조에 상호불신풍조까지 겹쳐 윤리도덕관마저 황폐된 것이 오늘날 한국의 실상이 아닌가.


지금 한국은 국민의 정부 출범으로 1세기동안이나 지탱되어오던 전근대적 군국주의 문화유산을 과감히 청산하고 처음으로 국민이 진짜 주인노릇하는 서구형 민주국가를 건설할 계기가 마련되었다. 백년전 근대화과정은 일제의 강압정치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국민들의 자율적인 의지로 이 역사적 과업을 이룩할 때가 된 것이다. 이 세상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인터넷 시대에 창시국인 일본조차도 수치스럽게 여기고 있는 군국주의 문화유산을 가지고 21세기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요 또한 문화민족으로서 너무도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우리의 기존 문화가 낡고 병들어 더 이상 시류에 맞지 않고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면 선진국 문물을 받아들여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 이 길만이 선진국이 되는 지름길이요, 21세기 한마을 개념의 지구촌시대를 살아가는 최선의 방법이다. 정치의 민주화, 경제의 시장 자율화를 근간으로 하는 서구문물은 지금까지 인류가 고안해 낸 최선의 정치경제의 철학이자, 인간의 정신적, 물질적 복지를 최대한으로 보장해주는 제도로서 그 동안 많은 시행 착오를 거쳐 역사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권력의 독재화와 경제의 독점화를 제도적 장치로 예방하고 조물주의 섭리에 의해 주어진 각자의 능력을 존중하여 공정한 게임의 룰을 만들어 승부를 가리고 그 결과에 승복하는 소위 페어 플레이 정신의 구현이 바로 서구문화의 기본핵이라는 점에서 오늘날 최고의 가치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국도 급속한 산업사회의 진전으로 말미암아 경쟁이 치열해진 이 시대에 이와같은 합리주의 및 현실주의에 입각한 공평성 위주의 문화를 갖지 못하면 사회질서를 유지할 수 없고 나아가 국제사회에서도 경쟁할 수가 없다. 후진국 국민일수록 민족적 자존심을 내세우며 나쁜 관습조차 개선하는 것을 꺼려하는 경향이 심해서 계속 후진국 탈을 벗어버리지 못하는 것이 보편적 현실인데 한국국민들은 더 이상 그러한 어리석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불가의 말씀대로 우리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민주화도 세계화도 국민들이 마음먹고 밀고 나가면 안될 이유가 없다. 미국에서 사는 이민 1세들이 생소한 미국의 제도와 문화를 즐기며 사는 이유도 이 땅에 발을 붙이면서 그렇게 하기로 작심을 했기 때문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