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소 타던 시대, 차 타는 시대

2001-03-0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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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철회 (공인 법정통역사)

LA 법정에서 한인들이 형사 사건의 피의자로 서는 케이스를 살펴보면 우리 한인들도 어느 타 인종 못지 않게 온갖 범죄를 저지르며 살고 있구나 하는 슬픈 자각을 하게 된다. 자랑스러운 배달 민족, 홍익인간이라는 고상한 건국 이념으로 나라를 세운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들로서 범죄 없는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바라는 것은 좀 지나치게 고지식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많은 인종이 섞여 살고 있는 이곳에서, 판검사들 사이에 ‘한인들은 왜 유달리 xx 하는 경향이 있는가’ 하는 딱지가 붙는 범죄는 줄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음주운전이다. 근래 미국 사회, 특히 법조계의 경향이 음주운전에 대하여 날이 갈수록 더 엄격해지고 있는 데에 반하여 음주운전으로 법정에 서는 한인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가고 있다. 단속이 전보다 심해졌으니 잡히는 사람의 수도 많아지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법정에서 근무하는 필자 같은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요즘 추세는 염려스럽다.

몇 년 전만 해도 음주운전으로 재판을 받는 한인들은 40대의 중년 남성들이 대부분이었다. 간혹 젊은 대학생이 재판정에 음주운전으로 나오게 되면 아버지 같은 판사가 준엄한 표정으로 훈계를 하고 가벼운 벌로 처리해 주던 것이 별로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요사이는 남녀를 불문하고 오든 연령층의 한인들이 음주운전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직장의 동료끼리 한잔하고 집에 가다가 걸려오는 직장여성이 있는가 하면 대학 동창들과 회포를 풀고서는 운 나쁘게 걸린 아줌마, 심지어는 부모 몰래 친구들과 한인타운의 술집에서 술을 마신 고등학생 등 별별 계층의 사람들이 다 음주운전으로 범죄인이 되고 있다. 얼마 전 글렌데일에서 대형 인명사고를 저지른 20대 초반의 아기 엄마의 경우가 예외적인 일이 아니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이렇게 술을 마시게 하는 것일까? 하기는 문화적으로 우리 한인들은 술 마시는 것을 일종의 멋 내지 풍류로 여기는 경향이 예로부터 있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수주 변영로 선생의 명정 40년 을 보면 그러한 사고방식이 가히 신선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승화한 예를 볼 수 있다. 그러한 주선(酒仙)의 경지에까지 이르지 못한 사람들도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을 두주불사(斗酒不辭)니 호주가(豪酒家)니 하는 식의 호의적인 어구로 표현해 주는 것이 우리네 정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술을 마시고 정신적 육체적 능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수 톤에 달하는 쇳덩이의 자동차를 수백 마력의 힘으로 무서운 속도에서 몰고 다니는 데에 있다. 수주 선생이 유려한 문체로 쓴 것 같이 몇 명의 선비들이 주흥에 겨워 대자연으로 돌아간답시고 옷을 홀딱 벗고서는 소를 타고 시내로 들어오다 경찰들과 실랑이를 버리는 식의 한가한 이야기가 아니다.

1996년에 나온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 전국에 걸쳐 매년 음주운전 관련 교통사고로 인한 무고한 피해자의 숫자는 4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음주 운전자들을 비교적 엄격하게 다루는 주로 알려진 이곳 캘리포니아 만 보아도 한 해에 음주운전에 관련된 사고로 인한 사상자의 숫자가 5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런 지경이니 미국인들이 음주운전이라면 치를 떠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미국은 세계에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개정이 어렵게 되어있는 헌법을 고쳐가면서까지 한 때 13년 동안이나 전국적으로 음주를 금하던 일도 있던 나라다.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음주에 대한 뿌리깊은 적개심을 엿볼 수 있다. 유독 우리 한인들이 그 표적이 될 필요가 있을까?

적당한 정도의 음주는 삶의 윤활유요 즐거움의 동반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소를 타고 다니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일순에 무서운 흉기로 변할 수도 있는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한 사회적인 책임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인들은 술을 먹으면 절대로 운전을 안 하는 관습을 가진 사람들이다’라는 평판을 우리 모두 만들어 볼 수 없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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