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YS회고록 파문과 유비통신

2001-02-2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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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영<본보 뉴욕지사 주필>

정치적인 언론의 자유가 거의 없었던 유신시대에는 「유비통신」이란 말이 유행했다.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정부, 특히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할 수 없었던 이 시대에는 사람들의 입과 입을 통하여 전해진 유언비어가 많이 나돌았는데 이렇게 소문을 퍼뜨린 유언비어를 유비통신이라고 했다. 유언비어가 얼마나 떠돌았던지 결국 긴급조치에는 유언비어에 대한 단속이 포함됐다.

그런데 이 유비통신이 어떤 때는 기막히게 정확한 경우도 있었다. 정치적 내막이나 스캔들이 처음에는 유언비어처럼 나왔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사실로 드러나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나 사실이 침소봉대로 불려져서 그럴 듯하게 소문난 경우는 있고 또 전혀 사실무근인 이야기가 사실인 것처럼 떠돈 유언비어도 있었다. 그야말로 유비통신은 믿거나 말거나 통신이었으나 언로가 막혔던 당시 사람들의 귀를 쫑긋하기에는 충분했다.

최근 한국에서는 YS 회고록이 나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워낙 독설로 유명한 YS인지라 회고록이 나오기 전부터 관심을 모으더니 결국 소동이 나고 말았다. 현역 정치인들에 관한 평가와 비화 중에서도 현직 대통령인 DJ에 관한 부분이 말썽이 된 것이다.


YS가 DJ에 관해 쓴 내용은 이렇다.

DJ의 부정축재를 법대로 수사했더라면 구속되었을 것인데 만약 선거를 앞두고 구속하면 호남과 서울에서 폭동이 일어날 우려가 있어 검찰총장에게 수사 유보를 지시했다는 것. 그리고 사건이 터지자 DJ가 다섯 번이나 면담을 요청했는데 나중에 수사를 유보하자 “감사합니다”는 말을 연발했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에 대해 청와대측은 사실이 아닌 허위 주장이라고 반박하면서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고 회고록 판매 가처분신청을 내는 등 법적대응을 하겠다고 나섰고 YS측은 회고록 내용이 진실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그러나 당사자인 DJ가 사실과 다른 점이 있지만 판단은 국민에게 맡기고 청와대에서 더 이상 거론하지 말라고 지시함에 따라 파국적인 대결은 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파문이 마치 YS회고록을 선전이나 한 듯이 서점가에서 이상 판매열기를 타고 있다고 한다. YS회고록은 서점마다 비소설 정치부문의 베스트셀러 1위일 뿐만 아니라 기록적인 판매량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사무실이나 사이버 공간에서도 YS회고록을 둘러싸고 “YS가 옳다” “DJ가 옳다”는 논쟁이 달아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 회고록을 둘러싸고 옳다, 그르다고 논쟁을 하는 사람들이 과연 내용의 진실을 알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워낙 거짓말의 선수들인 정치인들의 말이기 때문에 어느 말이 진실인지를 국외자는 알 수 없다. 다만 당사자들만이 진실을 알 것이며 시간이 지난 뒤 밝혀지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회고록에 흥미를 갖는 것은 유언비어를 쫓는 것과 흡사한 심리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는가. 지금 한국에는 언론의 자유가 어느 정도 확대되어 정부나 정책을 비판 공격할 수는 있으나 대통령만은 아직도 성역으로 남아있다. 가령 DJ의 비자금이나 과거 전력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 문제를 거론한다는 것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일에 해당한다.

한국에서는 어느 누구도 클린턴의 스캔들을 까 뒤집듯이 대통령의 개인 비리에 대하여 직격탄을 날릴 사람이 없다. 이런 상태에서 유일한 대항마로 떠오른 사람이 바로 YS이다. 그래서 다 죽어가던 YS가 다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직접 할 수 없는 일에 대하여 대리만족을 원한다. DJ와 YS가 정치 거목으로 성장한 것은 군사독재에 대한 대항마로서 많은 국민들에게 대리만족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YS회고록에 대한 인기도를 DJ로서는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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