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현대판 노예들

2001-02-2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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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 1초마다 숨통이 끊어질 것같다. 나같은 인간은 죽어야 한다. 죽고 싶다. 어떻게 해야 고통을 덜 받고 죽을 수 있을까. 환생을 하게 된다면 훨훨 나는 새로 태어났으면 좋겠다”

며칠전 한국신문에 보도된 한 윤락여성의 일기장 구절이다. 지난주말 한국에서는 충청북도에서 이 여성을 포함, 13명의 주점 접대부들이 수년간 노예처럼 매춘을 강요당해온 사실이 밝혀져 충격이 되었다. 주점에서 행해지는 매춘 자체는 새삼스런 일도 아니지만 접대부들이 처했던 상황이 너무 비인간적이어서 “아직도 이런 일이 가능한가”라는 경악을 불러일으켰다.

주점 주인은 여성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철창에 자물쇠까지 채워 24시간 감시를 했고, 여성들이 임신을 하면 단골 산부인과에 가서 낙태를 시키고, 낙태수술 받은 당일에도 매춘을 강요했다고 한다. 무려 9차례나 낙태수술을 받은 여성이 여럿이라는데 이런 고통을 견딜수가 없어 4명이 위험을 무릅쓰고 탈출을 함으로써 ‘노예매춘’의 실상이 드러났다.

기가 막힌 것은 40대 초반의 주인부부가 사교클럽의 회장이다, 학교 자모회장이다 하며 지역유지 행세를 해왔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노예매춘’이 보도돼 지탄의 대상이 되었을 때 LA에서는 ‘노예 가정부’이야기가 보도되어 주목을 끌었다. 지난 25일 LA타임스는 부촌 팔로스버디스에서 2년반동안 혹사당한 인도네시아 여성 이야기를 ‘현대판 노예 스토리’로 자세하게 다루었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했어요. 나는 기계 같았어요. … 지옥 같았지요”

30대 초반의 이 여성은 매달 150달러의 월급을 받아 부자가 될 꿈으로 미국에 왔는데 오고 보니 돈은 구경도 못하고 노예처럼 일만 했고, 나중에는 성폭행까지 당했다고 했다. 주인은 가정부 혹사사실이 밝혀져 지난해 27개월 징역형과 피해보상 판결을 받았는데, 부끄러운 사실은 이 가정의 주부가 한인이라는 사실이다.

21세기 미국에 노예가 있을까 싶지만 이름만 다를 뿐 실제로는 노예와 똑같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연방이민국은 LA인근에만 노예처럼 착취당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1만명정도 되는 것으로 보고있다. 불법체류 신분이 들통날 것에 대한 두려움, 영어를 못하는 데 따른 의사소통 불능, 그리고 철창과 자물쇠 같은 물리적 바리케이드에 몸이 묶여 탈출은 꿈도 못꾸는 현대판 노예들이 식당, 농장, 매춘업소, 일반가정 어디에나 있다는 것이다.

현대판 노예의 일차적 책임은 물론 부당한 고용주에 있다. 하지만 남의 일에 관심 기울이기를 귀찮아하는 현대인들의 시민의식 결여도 큰 문제이다. 현대판 노예는 사회와 이웃의 무관심 속에 늘어난다고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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