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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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와 전갈’ 이야기

2001-02-2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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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코노미스트

▶ 민경훈 <편집의원>

개구리와 전갈이 시냇가에서 만났다. 전갈이 개구리에게 시내를 건너야겠으니 등에 좀 태워달라고 부탁했다. 개구리가 태워주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독침이 무섭다며 거절했다. 전갈이 “타고 가는 도중에 너를 찌르면 나도 물에 빠져 죽을텐데 그럴 리가 있겠느냐”며 끈질기게 설득하자 개구리도 그도 그럴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결국 태워주기로 했다. 개구리가 물 한가운데로 나온 순간 갑자기 등에 따끔한 것이 느껴져 돌아보니 전갈의 독침이 자기 등에 꽂혀 있는 것 아닌가. 개구리가 “아니, 정신이 돌아도 유분수지 지금 나를 찌르면 어쩌자는 것이냐”고 따지자 “미안해,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찌르는 것이 내 천성이거든”하고 전갈이 답했다. 결국 개구리와 전갈은 물 속에서 같이 숨을 거뒀다. ‘개구리와 전갈’이라는 우화 한 토막이다.

처녀와 노인, 장사꾼의 3대 거짓말도 이와 비슷한 스토리다. 즉 “죽어도 시집가지 않겠다”, “늙으면 죽어야 한다”, “밑지고 판다”는 이들의 이야기는 믿는 사람이 어리석다. 짝을 찾으려는 남녀의 본능이나 오래 살고 싶은 노인의 욕망, 돈을 벌고 싶은 장사꾼의 욕심은 모두 천성으로 성인이 아닌 보통 인간이 이를 거스르기는 힘들다.

‘언제 물건을 사는 게 좋은가’라는 질문에 대한 브로커의 대답도 이와 유사한 부류다. 부동산 브로커에게 ‘언제가 주택 구입적기입니까’ 물으면 대답은 항상 ‘지금’이다. 증권 브로커도 마찬가지다. 항상 지금이 주식투자의 적기다. 값이 오르는 중이면 더 오르기 전에 사야 하고 내려가면 싸졌기 때문에 사야한다는 분석이다. 이들은 물건을 팔아 그 커미션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대답을 기대하는 사람이 바보다.


부동산 업계가 내다보는 올해 남가주 부동산 전망은 한마디로 쾌청이다. 미국의 전반적인 경기 둔화에도 불구하고 남가주 부동산 시장만은 끄떡없다는 것이 대다수 부동산 관계자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이들이 올해 경기를 낙관하는 이유는 많다. 첫째, 인구유입은 계속되고 있는데 건물 지을 자리는 없기 때문에 매물 부족 현상을 빚고 있다. 둘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에서 앞으로도 계속 금리를 내릴 것이기 때문에 주택 융자가 쉬워진다. 셋째, 남가주는 하이텍, 연예, 무역등 미국 경제 성장을 주도하는 산업이 고루 분포돼 있기 때문에 불황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이다 등등.

이같은 주장은 모두 타당하다. 그러나 90년대 초 남가주 부동산 경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도 똑같은 소리가 나왔다. 부동산 업계의 일방적 낙관론에도 불구하고 올 부동산 경기를 장밋빛으로만 볼 수 없게 하는 각종 자료가 최근 쏟아지고 있다. 그중 하나는 1월 미국 기존 주택 판매가 6.6% 하락하면서 1년내 최저를 기록했다는 소식이다. 주택 판매 감소는 가격 하락이 시작되기전 종종 일어나는 현상이다. 안팔린 주택 매물도 전달 3.4개월 공급분량에서 3.6개월로 늘어났으며 중간주택가도 13만9,700달러에서 13만6,600달러로 떨어졌다.

그러나 이보다 극명하게 주택시장에 부는 찬바람을 보여주는 것은 호화주택의 시세다.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에 이르기까지 수백만달러 규모의 고급 주택들은 20%씩 가격을 내렸는데도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 빈 채로 남아 있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월스트릿저널은 매주 시장에 나온 호화판 주택을 한 채씩 선보이는 ‘금주의 주택’란을 마련하고 있는데 작년 여기 나온 주택중 팔린 것은 52채중 11채에 불과했다. 그 전해까지만 해도 1/3정도 팔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따지고 보면 지난 수년간의 부동산 붐은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남가주(그중에서도 어바인을 비롯한 오렌지 카운티)에 편중된 현상이었다. 이들 세 지역의 특징은 지난 수년간 미국 호황을 떠받쳐온 하이텍과 증시의 중심지라는 점이다. 이들 고급 주택시장의 침체가 지난 봄이래 현재 진행형인 하이텍주의 몰락과 무관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지금까지 고급주택에 국한된 경기 냉각이 밑으로 점점 퍼지지 말란 법은 없다. ‘한번 속은 것은 속인 사람 잘못이지만 두 번 속으면 속은 사람 탓’이란 속담도 있다. 호황과 불황 사이클은 모든 경제현상에 공통되는 현상이며 부동산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대다수 미국인들도 마찬가지지만 한인들의 재산목록 1호는 주택이다. 일방적 낙관론에 빠져 90년대초의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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