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투서문화

2001-02-27 (화)
크게 작게

▶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이조 후기 때 사람인 목호룡은 고변으로 악명을 떨쳤다. 그가 한번 악심을 품고 관가에 소장을 냈다 하면 한다 하는 양반 집도 ‘가을바람 앞에 가랑잎’ 신세가 되기 일쑤여서 서울 장안의 사대부들은 목호룡이라고 하면 벌벌 떨었다고 한다.

고변이라는 것은 역모를 사직 당국에 알리는 것이다. 또 고변자는 역모를 꾀한 사람의 재산을 그 보상으로 받았다. 당시 역모에 몰리면 전 재산이 몰수되는 것은 물론이고 3족이 모두 죽는 화를 입었다.

고변은 요즘 말로 표현해 ‘정권도전 세력을 가차없이 처벌하겠다’는 취지에서 장려됐다. 이런 고변을 제도화시킨 인물이 태종이다. 태종 시대의 신문고는 억울한 사람을 돕는다는 목적으로 설치됐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는 골육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 자신처럼 정권을 넘보는 세력이 없는지 두려움 속에 신문고를 설치해 고변을 적극 장려했다는 것.

신문고는 그래서 억울한 사람의 사정을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기보다 멀쩡한 사람을 역적으로 몰아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하는데 더 많이 사용됐다는 이야기다.


이로 보면 고변, 다른 말로 하면 투서질은 사회상과 밀접한 상관 관계에 있는 것 같다. 목호룡이라는 사람이 악명을 떨친 이조후기는 노론과 소론의 대립이 극한상황에 이르러 명문세가도 하루 아침 역모에 몰려 몰락하던 시기다. 유혈의 궁중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태종 시대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투서질이 LA 한인 사회에서도 극성을 떨고 있다. 역대 LA 총영사 치고 투서질에 시달리지 않은 경우가 없다. 최근의 사례가 김명배 전 총영사 케이스. 김 전 총영사는 야당을 돕느니 어쩌니 밑도 끝도 없는 투서에 시달려 결국은 두 차례나 진급에서 누락됐다는 소문이다.

한인들의 투서는 영사관을 타겟으로 한 투서로만 그치지 않는다. 주류사회 요로에도 한인들의 투서가 빗발치고 있다. 일차 시정부 공무원 등으로 일하는 한인들이 타겟이다. ‘건방지다’등 시비성 투서는 점잖은 편이다. 사실무근의 모함성 투서까지 판친다. 또 특정 단체가 시쳇말로 ‘뜨면’ 역시 투서질 대상이 된다. 그 단체는 한인 커뮤니티를 대표하는 단체가 결코 아니라는 식의 투서다.

한인 경관들이 한인타운 근무를 꺼리고 있다는 보도다. 모함성 투서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뉴스도 아니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한인들의 끈질긴 투서질은 이미 한가지 확실한 효과를 가져왔다. "한인사회는 분열이 된 사회로 구심점이 없다"는 인식을 미주류 사회에 뚜렷이 부각시킨 것이다. 이는 걸핏하면 투서질이나 해대는 한인 사회에 대해 LA시 인간관계 위원회가 수년 전에 이미 내린 진단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