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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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뿌리교육

2001-02-2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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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정아<특집부 기자>

지난 9일 LA카운티 10종학력경시대회 시상식에 취재 갔을 때였다. 모여 앉은 학생들을 보니 대다수가 아시안이라 한인학생들의 활약이 기대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분명해진 것은 이날 행사가 중국계 학생들의 잔치라는 것이었다. ‘Lee’, ‘Yang’, ‘Wang’이 한인학생인가 달려가보면 매번 중국계였다. 개인종합우승은 물론 12명의 지역별 개인종합 금메달 수상자가운데 5명이 중국계였다.

중국 학생들이 공부를 잘한다는게 뉴스는 아니다. MIT는 중국학생들이 하도 많아서 별명이 ‘Made in Taiwan’일 정도이다. 칼텍은 학생들사이에 ‘Chinese Institute of Technology’로 통한다. 중국계가 전체 대학생의 20%를 차지하는 UC 버클리는 ‘University of China at Beijing’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날 정신없이 인터뷰에 바쁜 중국계기자들을 지켜보면서 중국계 학생들이 미국 대학에서 이같이 뛰어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이민역사가 짧아서 우리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일까? 그러나 수상한 우등생마다 하나같이 중국어로 유창하게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보면 혹시 뿌리교육이 진정한 교육열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한국학교 수를 따지면 우리가 중국 커뮤니티에 뒤지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어를 구사하는 중국계처럼 한국어를 제대로 하는 한인 2세들을 보기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교육자들은 단순히 일주일에 한번씩 한국학교에 보내는 것으로는 자녀가 한국어를 습득하는데 무리가 있다고 말한다. 가정에서 일상적으로 한국어를 꾸준히 사용하고 부모가 스스로 스승이 되어 뿌리교육의 중요성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어느 민족보다도 뿌리교육이 철저하기로 이름난 유태인들만큼 아이비리그 대학을 장악한 민족이 없다. 유태인들이 수천년동안 흩어져 살면서 언어와 전통을 대대로 계승했을 뿐 아니라 이국문화에서 엘리트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은 소수민족으로서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심어준 뿌리교육이 기초가 되고 주류사회 진출의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인 학부모들사이에는 뿌리교육을 원동력이 아니라 오히려 교육의 장애로 여기는 경향이 없지 않다. "집에서 한국어를 쓰면 영어를 못 배운다", "SAT II 한국어를 치면 대입에 불리하다", "한국어반보다 스패니쉬반을 택해야 원서에 더 좋아 보인다" 등의 생각에 UCLA 입학사정관이 한국어 SAT II 시험에서 790점을 받는 것이 물리 SAT II 시험에서 700점을 받는 것보다 유리하다는 소식을 전해줘도 믿지 못한다.

참된 뿌리교육은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사이에 이뤄지는 것이다. 그리고 참된 교육열이 있어야 뿌리교육이 가능하다. 부모가 자녀에게는 우습기 짝이 없는 서툰 영어로 품위를 잃어가며 언어소통을 시도하는 것 보다 모국어를 철저하게 가르쳐 한국어로 깊은 대화를 하는 것이 더 순리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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