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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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적인 ‘모국지향’

2001-02-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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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영창<언론인>

지난달 부시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키 위해 한국에서 30여 정객이 워싱턴을 방문했다. 이들중 상당수가 취임식을 전후하여 동포사회를 상대로 자신들의 후원회도 만들고 지지자들을 규합하는 모임을 잇달아가져 워싱턴 한인회장을 비롯한 ‘동포유지’들의 주가를 한껏 올려놨다.

이를 주도하는 정객들이야 나름대로 자신들의 정치적인 이득을 얻기 위한 활동으로 볼수 있으나 이들의 부탁을 받고 혹은 자청해서 모임을 주선하는 동포들에게는 ‘모국지향적’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칭이 붙는다. 미국에 살면서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적응할 노력을 해야지 모국정객들과의 연계를 맺는데 정력을 낭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당연한 논리다.

미주한인사회에서 모국지향적 이라는 단어가 생긴 것은 지난 1969년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파동으로 부터였다. 한인사회의 악화된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일부 유력인사들을 모국의 요직에 기용하자 그후 너도나도 모국 정계실력자와의 연줄대기가 동포사회를 풍미하기 시작했다.


한인회장을 비롯 한인단체장을 맡으면 본연의 임무보다는 모국정객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위상을 격상시키려는 이른바 ‘호가호위’의 풍토가 30년간 말썽이 되다보니 ‘모국지향적’ 인사에 대한 동포사회의 여론이 따가울 수밖에 없게 됐다.

더욱이 각고의 노력(?) 끝에 모국의 정, 관직에 발탁돼 이곳을 떠나는 모국지향적 인사들의 환송회 석상에서의 한결같은 답사는 “미국에서 배운 지식과 경험을 모국의 현실에 접목하여 모국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단 모국정계라는 탁류에 합류되면서부터 미국에서의 ‘맹서’는 찾을 길이 없이 되니 ‘모국지향적’에 대한 동포사회의 거부감은 굳어져갔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동포사회에서 부정적 이미지를 갖는 모국지향적이라는 이 말은 정치분야에만 한정적으로 쓰여짐을 알 수 있다. 가령 실업인이 모국정부와 연계하여 사업을 벌이는 경우와 한국문화를 미국에 소개하기 위하여 한국정부와 협력하는 인사는 모국지향적이라 할지라도 긍적적인 평가를 받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모국지향적인 것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주체성 없이 모국정잭의 장단에 부화뇌동하는 ‘어물전의 꼴뚜기’에 문제가 있는 셈이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이곳에 거점을 확보하려는 모국의 정객들이 노리는 것은 분명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일진대 이들에게 시간과 돈과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이곳 동포들도 정객들의 힘과 에너지를 한인사회의 발전과 성숙에 이용하려는 기브 앤드 테이크의 초보적인 상식쯤은 있어야겠다.

지금이 독립운동이나 민주화 운동하던 시절은 아니지 않는가. 사실 머리가 굳어 이민온 1세들에게는 모국이란 죽을 때까지 결코 잊을 수 없는 마음의 고향이다. 평범한 한인 1세들이 미국에서 한글신문을 보면서 특히 정치기사에 관심을 갖는 것은 1세들의 속성상 정서안정에 도움을 주며 오락기능의 역할도 한다고 본다. 이렇게 본다면 ‘모국지향적’이란 말은 원래 아름답고 소박한 것인데 근래 한국정치의 불안정성과 과도기에 처한 한인사회의 성숙치 못한 일부 형태가 이말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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