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We Love School"

2001-02-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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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현 <사회2부 부장>

"조용히 살겠다" "한국과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겠다" "먹고살기 바쁜데 옛친구 만나서 뭐하나"... 본보 타운피플면의 새 코너 ‘we love school’에 대한 일부 독자들의 냉소 섞인 반응이다.

반면 실낱 희망으로 ‘we love school’에 노크하는 독자들도 있다. 자신의 집에 불이 나는 바람에 수개월간 친구 집에서 신세졌다며 꼭 만나 고마웠다는 말을 하고 싶다는 독자.

친구의 전화에 "내일 연락하겠다"고 했다가, 수첩을 잃어버려 그 날 통화가 마지막이 됐다며 안타까워하는 독자. 낯선 미국에서 별탈 없이 사춘기를 보내는데 힘이 돼 준 친구를 찾는 독자.


6.25 때문에 중도에 그만둔 초등학교 이름이 ‘we love school’에 등장하자 반가워하며 전란 통에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던 동창들을 찾으려는 독자. 졸업 50년 후에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병을 안고도 애타게 은사를 찾는 할머니.

적지 않은 한인들에게 한국이 좋지 않은 이미지로 남아있음은 사실이다. 한국에 대한 것은 미련 없이 싹 잊으려 한다. 특히 잘못된 시스템의 피해자라면 이런 생각은 더욱 확고하다. 그렇다해도 옛 만남까지 씻어버리는 것은 지나친 감이 있다. 더욱이 지금은 영 다른 미국사회에서 살고 있다.

망각의 동물인 우리지만 옛 친구와의 추억은 붙들어둘 만하다. 짧게는 10여년 길게는 40여년 전 만남을 되살리려는 독자들이 ‘we love school’을 두드리는 소리는 그래서 아름답다.

나라가 다르고 생김새가 달라도 옛 친구를 만나면 가슴이 뛴다. 인도네시아 와히드 대통령은 72년 바그다드대학 재학시 기숙사와 캠퍼스 인근 아파트에서 룸메이트를 했던 한인 오만규씨를 백방으로 찾아 나섰다.

28년만에 극적으로 만난 두 사람은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보는 이들도 뭉클해했다. 한 사람은 대통령이 됐고 다른 사람은 미국에 와 평범한 시민으로 살았지만, 밥을 같이 해먹고 설거지도 같이 하던 둘의 만남에 벽이 있을 리 없다. 하물며 같은 시대, 같은 문화 속에서 비슷한 생활을 해온 우리들 사이에서야 두말할 필요도 없다.

동창을 찾으려는 노력이 ‘과거지향’으로 눈총 받을 수 있다. 미 주류사회에서 도전과 응전을 거듭해야 하는 청장년들이 옛 친구와의 기억에 매어 있어서야 되겠느냐는 지적이다. 하지만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푸근했던 과거를 돌아보는 여유는 지금의 우리를 바로 보는데 도움을 준다.

직장 다니며 비즈니스하며 맺은 친분도 좋지만, 옛 친구들과 격 없이 쌓은 우정은 또 다른 향기를 낸다. 술맛을 감칠 나게 하는 오래 묵은 누룩처럼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 20년, 30년만에 만나도 반말이 어색하지 않다. 그토록 장기간 떨어져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서로 다른 곳에서 오래 살아 생긴 자기 색깔도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다.

대학보다는 고등학교, 그보다는 중학교, 나아가 초등학교 동창들의 만남이 더 이채롭다. 대학 동창들만 해도 비슷한 부류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저학년 때 친구들을 만나면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사회적 경제적 위치도 다르다. 그러나 스스럼없이 지낼 수 있다.

우리는 비행기에 오를 때 가졌던 것을 버렸다. 이 땅에 내리면서 ‘제로’에서 시작했다. 꿈과 희망을 품고 새롭게 일궈가고 있다. 하지만 외로움과 슬픔도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옛 친구를 만나 기쁨과 어려움을 함께 하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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