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임 총영사에게 바란다

2001-02-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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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설

시끄러운 소수가 목청을 크게 울리다 보면 조용한 다수의 의사가 무시될 때가 있다. LA 한인타운에서 되어지는 일들 중에는 이런 경우가 적지 않다. 가령 커뮤니티의 이름으로 어떤 행사가 열렸다고 하자. 총영사가 인사말에 나선다. 구호도 거창하다. 그런데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몇몇 사람의 이해가 걸린 일인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다. 총영사가 바뀔 때마다 매번 같은 현상이 되풀이 돼서다. 새로 부임하는 총영사는 처음에는 여러 곳을 방문하며 각계각층의 여론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하루 이틀 세월이 지나다 보면 영사관의 ‘총아’(寵兒)가 따로 생긴다. 그리고 총영사는 어느덧 특정 인사, 소수 단체장들의 포로가 되고 만다.

이럴 경우 총영사가 한인 사회를 돕는다고 나선 일이 오히려 분열을 조장하고, 또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어 그르치기 십상이다. 영사관을 열심히 드나드는 ‘시끄러운 소수’에게만 귀를 기울인 탓이다. 과거 지나치게 친정부 일색으로 이루어져온 평통 인선이 그 대표적 사례다. 또 한동안 물의를 일으켰던 폭동성금, 교육관 설립 문제 등도 따지고 보면 총영사가 다수의 바람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데서 빚어진 결과다.


그렇다고 해서 브라질 대사로 떠난 김명배 전 총영사가 소수 단체장의 포로가 돼 있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또 새로 부임한 성정경 총영사가 그렇다는 것은 더구나 아니다. 너무나 오랜 세월동안 총영사관은 친정부 인사, 아니면 여권에 줄을 대고 있는 인사들이나 드나드는 곳이란 인상을 주어왔고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그같은 인상은 지워지지 않고 있어 하는 이야기다.

총영사가 소수 특정 단체장들의 포로가 되면 ‘봉사하는 총영사’가 아니라 ‘군림하는 총영사’가 되기 쉽다. 항상 굽신대는 사람들에 둘러싸이다 보면 눈과 귀가 흐려져 부지불식간에 봉사를 하겠다는 초심의 자세가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50여만 인구의 LA한인 사회는 단순한 커뮤니티가 아니다. 규모가 이같이 방대하다 보니 전체 한인 사회의 의사를 파악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각계 각층의 의견을 듣고 또 조언을 구해도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실수를 범하기 쉽다. 신임 성정경 총영사는 커뮤니티의 여론에 항상 민감히 반응, 겸허한 자세로 받아들이고 그러므로 해서 한인 사회로부터 폭넓은 존경을 받는 ‘봉사하는 총영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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