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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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주는 나무

2001-02-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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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희<고려서점>

쉘 실버스타인이 쓴 ‘아낌없이 주는 나무’만큼 나에게 사랑에 대해 명쾌하게 일러준 책은 없다.

옛날에 나무 한 그루가 있었고, 그리고 그 나무에게는 사랑하는 소년이 하나 있었다. 소년은 어렸을 적, 매일 같이 나무를 찾아와 나무줄기를 타고 올라가 그네를 뛰고, 사과를 따먹으며 놀았고 그러다 피곤해지면 나무 그늘에서 단잠을 자기도 했다. 소년은 나무를 사랑했고,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다. 그러나 소년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무를 찾는 일이 줄어들었고, 그래서 나무는 슬퍼한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이 다시 나무를 찾아와, 갖고 싶은 물건을 사기 위한 돈이 필요하다고 하자, 나무는 자신의 열매를 내주며 행복해한다. 세월이 흘러, 청년이 된 소년이 다시 나무를 찾아와, 자신이 살 집이 필요하다고 하자, 나무는 자신의 가지를 베어 집을 짓게 해주며 행복해한다.


또 세월이 흘러 장년이 된 소년이 다시 나무를 찾아와, 먼 곳으로 떠나기 위한 한 척의 배가 필요하다고 하자, 나무는 자신의 줄기를 베어 배를 만들도록 해주며 행복해한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흘러, 노인이 된 소년이 다시 나무를 찾아온다. 이제는 열매도, 가지도, 그리고 줄기도 없는 나무는 더 이상 소년에게 줄 것이 없어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이제는 필요한 건 별로 없는 힘없는 노인이 된 소년은 다만 피곤한 몸이 쉴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고 하자, 나무는 안간힘을 다해 지신의 굽은 몸뚱이를 펴, 소년이 쉴 나무 밑동을 만들어준다. 소년은 나무 밑동에 앉아 편히 쉬고,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다는 이야기의 책이다.

사랑하는 소년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줄 수 있었던 나무, 그리하여 마침내는 더 줄 것이 없어 안타까워했던 나무, 한 폭의 수채화 같은 고결한 감동이 담겨있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으며 나는’ 사랑’은 자기가 가장 아껴두었던 것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것임을, 주어도 주어도 더 줄 것이 없어 아쉬운 것이 사랑의 마음임을 알게 되었다.

살아있는 동안,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그렇게 키 큰사랑을 하다 보면, 그래서 괴로운 일은 잊고 천천히 욕심 없이 흐르다 보면, 아픈 시간은 덤덤히 넘어가고 사랑이란 이름의 나무가 그늘진 내 쉴 자리를 마련해 주는 날도 있으리라. 문득 그 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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