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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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성공인가

2001-02-1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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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진식<사이프러스>

요즘 한국의 아이들은 성장기의 과정에서 한번쯤 인생의 깊이와 넓이를 진지하게 생각해 봄직 한데 그들은 사고를 단순화하여 어떤 사회인이 되느냐 보다 무슨 직업인이 되느냐에 더 집착한다. 이같은 현실은 유교문화의 권위 지향성이 자본주의 속성의 하나인 천박한 배금주의와 공존하면서 부모들이 아이들을 무엇으로 만들까하는 데서 비롯된다.

우승열패의 무한경쟁 속에서 부모가 만드는 아이들은 태아기부터 건강에 좋다는 보약과 두뇌가 명석해진다는 음식물을 공급받고, 태어나면서부터 천재교육을 강요받으며 부모의 세속적인 욕망에 의한 대리만족의 상품으로 가공 육성되어 간다. 부와 권력을 함께 가질 수 있으면 최선이고 그 중 하나를 가져도 성공이다. 그래서 판검사, 의사 또는 박사 같은 고급 상표가 붙은 근사하게 포장된 인물을 인간시장에 내놓고 싶어하고, 또는 골프, 야구등 운동에 어릴 적부터 투자 육성하여 인기 있는 고가의 스타로 출세시키고자 한다.

이와 같은 부모의 바람은 미국이민 1세에게도 공통된 현상이다. 실제로 1.5세나 2세들 중에는 부모가 의도한 직업으로 성공한 아이들이 참 많다. 그러나 일부 아이들은 이민생활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고생하는 부모의 기대와 자신의 능력간의 거리에 스트레스를 받고 정서상 불안으로 방황하다가 우울증에 걸리고 또래의 아이들과 어울려 환각제에 손을 대게 되고 심하면 범죄마저 저질러 자신의 인생을 망치고도 있다.


나는 가끔 한인 청소년들이 수갑을 채인 모습으로 성인재판을 받는다는 기사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저 어린것이 덩치가 크고 사나운 여러 인종의 흉악범들 속에서 오랜 세월동안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 살아가야 하다는 것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부모 또한 자식의 불행을 가슴에 담고 지옥 같은 인생을 살아가야 하니- 왜, 무엇이 저 애들을 저렇게 만들었을까?

아이들의 성격 탓으로 돌리기에는 부모의 책임이 너무 크다. 부모의 욕심은 자식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자식은 혼돈을 느낀다. 또 부모의 과욕이나 무관심이 아이들을 고독하게 만든다. 부모가 좀더 선배 같은 사랑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열어서 포근하게 의논상대가 되어 주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내가 미국에 이민 온 초기, 가게에 드나드는 중산층 백인 아이들에게 장래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더니 큰 트럭 운전사, 농구선수, 초등학교 선생, 또는 디자이너 등을 말했다. 아무도 대통령이 되겠다고는 말하지 않기에 아이들의 꿈이 너무 작다고 실망스러워 했지만, 그동안 살아오면서 가정의 행복을 소중히 하고 분수를 지키며 열심히 살아가는 그들 보통 사람들의 생활에 깊은 공감을 느꼈다.

가정과 교회가 아이들에게 인간교육을 시키고 학교가 시민교육을 시키는 미국에 이민 와서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전문직을 갖는 것만이 성공이 아니라, 불완전한 아이들이 이국생활에서 새 언어를 배우면서 힘겹게 적응해가며 마약이나 갱들의 유혹을 극복하고 보통의 직업에 종사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것만도 우리 이민 1세에게는 이민생활이 성공적이었다고 자부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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