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이만섭 국회의장이 지난달 중순 남미 칠레에서 열린 아태 의회포럼 총회에 참가하는 길에 LA에 들른 일이 있다. 이 의장이 한인단체장, 언론계 인사들과 대화를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해와 LA 총영사관에서 자리를 주선했다.
총영사관저에서 있었던 이 의장과의 간담회에 단체장으로는 한인회장, 상공회의소 회장, 평통회장 등 3명만이 초청 받았다. 이 사실을 뒤늦게 전해들은 몇몇 단체장이 영사관으로 몰려갔다.
단체장들은 "아니, 우리 단체 회원이 몇 명인데 내 위상이 아무개 단체장보다 못하다는 말이냐"며 한바탕 난리를 피웠다. 흥분한 단체장들에게 멱살잡이를 당하다시피 한 담당영사가 "비공식 방문인지라 참석자를 제한해달라는 이 의장측 부탁이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끝내 분을 삭이지 못한 모 단체장은 ‘교민사회의 분열을 조장하는 자질 없는 영사를 내보낸 책임’을 묻는 팩스를 한국 외교통상부로 보냈다. 평소 무슨 일만 있으면 한국의 청와대다, 외통부다, 국회다 뻔질나게 투서를 해대는 일부 LA 한인들의 생리를 외통부 감찰실에서도 잘 알고 있어 문제가 확대되지는 않았지만 LA 동포사회의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다시 한번 한국 정부에 과시하고 만 셈이다.
"LA 한인들은 다른 지역 동포들에 비해 인정이 있고 수준도 높습니다. 이곳에 근무하는 동안 고마운 분들도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미꾸라지 한 마리가 연못을 흐려놓듯이 소수의 인사들이 분위기를 흐려놓고 있는 점은 한인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LA 총영사관에서 근무하다 얼마전 귀임한 한 중견영사의 말이다. 그는 LA 한인사회에 회원도 없고 뚜렷한 활동도 없이 행사 참여나 한국에서 정치인이 오면 뒤따라 다니는 일을 주업무로 삼고 있는 유명무실한 단체장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물의를 빚는 것도 대부분 이들인데 미꾸라지 정화에 앞장서야 할 언론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미국 땅에 살면서 툭하면 한국 정부기관에 투서질을 해대는 것은 반드시 고쳐야 할 우리의 악습이다. 평통회장 임명 때마다 투서 물의가 없이 넘어간 적이 없고 역대 LA 총영사들 가운데 투서를 안 당해본 사람이 없다. 최근 브라질 대사로 영전한 김명배 전 총영사도 LA 한인사회의 투서로 인해 두 차례나 진급에서 누락됐다고 말한 바 있다.
이제 미주 한인사회도 이민 100주년을 맞았다. 케네디 이민법에 따른 본격이민이 시작된지도 30년을 넘어섰다. 성년의 의젓한 모습을 보일 때가 된 것이다. 만찬에 초청 받지 못한 정도의 일로 한국 정부에 투서를 해댄다는 것은 낯뜨거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