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회 오스카상 후보 발표결과 가장 놀랍고 경사스러운 일은 대만영화 ‘와호장룡’이 작품 및 감독(앙 리)상등 모두 10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다는 것이다. 로마시대 액션영화 ‘검투사’가 역시 작품 및 감독(리들리 스캇)상등 12개 부문서 후보에 올라 최다 후보작이 되었지만 그것은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다. 결국 최종 작품 및 감독상은 이것이 거머쥘 가능성이 가장 크다.
오스카 사상 ‘와호장룡’ 같은 외국어 영화가 10개 부문 후보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이 영화는 작품상과 함께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결국 외국어상을 받게 될 것이다. ‘와호장룡’은 지금까지 6,300만달러의 수입을 올려 외국어 영화로서는 할리웃 사상 최고의 흥행영화가 됐다. 종전 기록보유 영화는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이번에 10개 부문에서 후보에 오르면서 흥행 1억달러를 돌파할 가능성이 있다.
작품상 후보중 다소 예상 밖의 것은 ‘초콜릿’. 마법의 효능을 지닌 초콜릿을 만드는 여자의 얘기인데 너무 들쩍지근해 비평가들로부터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받은 영화다. 이것이 작품상 후보에 오르고도 감독상(라세 할스트롬) 후보에서 제의된 것이 영화의 작품성에 대한 의문을 표시하는 증거다. ‘초콜릿’이 작품상 후보에 오른 것은 전적으로 배급사인 미라맥스의 하비 와인스타인의 저돌적 홍보에 힘입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미라맥스의 영화는 과거 11년간 모두 10번 작품상 후보에 올랐었다. 이 영화보다는 ‘올모스트 페이머스’나 ‘원더 보이즈’가 후보에 올랐어야 한다.
’에린 브로코비치’와 ‘거래’로 감독상 후보에 오른 젊은 스티븐 소더버그는 오스카 사상 63년만에 처음 두 작품으로 모두 후보가 됐다. 그는 또 이 두 영화가 모두 작품상 후보에 오름으로써 자신의 영광에 빛을 더 했다.
그러나 골든 글로브에서도 나타났듯이 소더버그는 자기 작품들끼리 경쟁하는 바람에, 리들리 스캇에게 어부지리를 안겨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두 영화에 관계된 사람들은 소더버그가 어느 한 영화를 지지해 주기를 요구하고 있으나 소더버그는 "둘 다 내 영화"라며 그것에 응하지 않고 있다.
남우주연상 부문서 특기할 만한 것은 미국서는 아는 사람이 없는 스페인 배우 하비에르 바템이 후보에 오른 것. 스페인의 빅스타(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살아있는 육체’)는 쿠바의 망명시인 레이날도 아레나스의 삶을 다룬 ‘밤이 오기 전에’로 후보에 올랐다. 또 다소 놀라운 사실은 에드 해리스가 후보에 오른 것. 그는 미국 추상화가 잭슨 폴락의 삶을 그린 ‘폴락’(16일자 파트I 26면 참조)으로 후보에 올랐는데 전문가들도 다소 예외로 생각하고 있다.
이미 오스카 주연상을 두번이나 탄 오스카 단골 후보인 탐 행크스는 ‘표류자’로 또 후보에 올랐다. 최종상은 ‘검투사’의 러셀 크로우가 받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 영화는 오스카 회원들이 좋아하는 감정 풍부한 대규모 서사적 작품이어서 오스카상을 휩쓸 가능성이 있다.
여우주연상은 ‘에린 브로코비치’의 줄리아 로버츠가 받을 게 분명하다. 흥행 보증수표인 그가 마침내 실력을 인정받는 순간이 될 것이다. ‘꿈을 위한 진혼곡’으로 역시 이 부문 후보에 오른 엘렌 버스틴(68)은 지난 74년 ‘앨리스는 여기 살지 않는다’로 이미 오스카 주연상을 받은 베테란이다.
작년 할리웃에 아시안 영화가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왔던 것에 비하면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와호장룡’ 하나만이 오른 것은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다. 임권택의 ‘춘향뎐’도 탈락했고 비평가들의 격찬을 받은 홍콩의 로맨스 영화 ‘사랑하고픈 기분이지요’도 외면당했다.
이 부문서 특기할 만한 것은 멕시코의 아모레스 페로스 감독의 데뷔작 ‘사랑은 개같은 것’이 후보에 오른 사실. 대단히 재미있고 기술적으로도 뛰어난 영화이나 매우 끔찍한 장면(특히 투견장면)이 많아 나이 먹고 점잖은 오스카 회원들에겐 거부감을 줄 것으로 여겨졌었다.
늘 말썽 많은 기록영화 부문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비평가들의 격찬과 함께 흥행도 좋았던 ‘어두운 날들’과 ‘행크 그린버그의 삶과 시대’ 및 ‘175조’가 빠진 것. 오스카상 후보가 발표되기 전 이것들이 후보서 제외됐다는 뉴스가 새어 나왔는데 그 후 이 영화들을 만든 사람들은 기자를 비롯한 LA 영화비평가협회원들에게 편지를 보내 이런 부당한 사실에 대해 강력히 항의했었다. 오스카 시상식은 3월25일 하오 5시부터 ABC-TV가 슈라인 오디토리엄에서 생중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