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죽음을 부르는 사랑

2001-02-15 (목)
크게 작게

▶ 정재엽

현재 나는 전공과목을 위해서 에이즈 프로그램 인턴과정에 있다. 아직은 생소한 미국생활 적응 때문에 갖는 어려움과 함께 ‘에이즈(AIDS)’라는 병이 지니고 있는 혐오감 또한 나를 힘들게 하였다. 그것은 한국에서 있었던 몇 가지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웅변대회 출전을 위해 원고에 필요한 국내 에이즈 실태와 통계자료 때문에 ‘한국에이즈협회’를 찾은 일이 있었다. 그런데 협회 문 앞을 들어설 때부터 사람들의 시선이 그리 곱지만 않았다. 소위말해 병자취급을 하는 것이었다. 입구의 경비 아저씨에서부터 시작해서 만나는 사람마다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 보았다. 이런 기억을 가진 내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하게 된 일이 에이즈 프로그램이었으니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그러나 얼마되지 않아서 에이즈를 바라보는 한국과 미국의 시각에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너무나도 에이즈에 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다. 더욱 놀랐던 것은 HIV 바이러스 양성 환자들도 아주 거리낌 없고 당당하게 자기 자신을 드러내 놓고 서슴없이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바이러스 보균자들과의 대담시간을 통해서 만났던 어떤 환자는 자신의 성적 행위와 그 결과를 숨기지도 않았으며 현실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감염을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연된 것을 세상에 공개하고 “나는 이 병과 이렇게 싸우고 있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그리고 친구들은 그에게 입맞춤을 하며 용기를 복돋아주고 있었다.

영화 ‘필라델피아’나 현재 상영중인 뮤지컬 ‘렌트’등을 보면 환자나 그를 둘러싼 친구들과 가족들이 따스한 사랑과 깊은 이해로 아름답고 성숙하게 살아가는 모습들이 감동을 일으키게 한다.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을 배척하고 돌팔매질하기 보다는 오히려 따뜻하게 감싸 안으려는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교회나 성당에서 진행되는 소그룹 모임에서도 그들은 에이즈에 관한 이야기를 꺼려하지 않는다. “여러분과 함께 이 자리에 있던 우리 친구가 숨졌으니 그의 명복을 빌어주자” 혹은 “누가 에이즈로 병원에 있으니 여러분의 작은 성의가 그에게 완쾌하려는 의지를 줄 것이다”라는 식의 멘트를 하곤 한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무섭게 들렸던 일들이 이내 작은 충격과 커다란 감동이 되었다. 이들은 에이즈를 격리하고 터부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에이즈를 감싸 안는 방식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에이즈를 ‘애사(愛死)’라고 한다. 사랑 때문에, 사랑으로 인한 죽음이라는 뜻이다. 에이즈 환자를 똑같은 한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사실 에이즈는 성관계를 갖는 누구에게나 그 감염 가능성이 있다. 드문 예로 수혈을 하다가 바이러스가 옮는 경우도 있고, 어머니 때문에 뱃속에서부터 바이러스를 지니고 태어날 수도 있다.

에이즈에 있어서 가장 좋은 치료방법은 예방이다. 하지만 에이즈는 더 이상 다른 나라의,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에이즈는 우리 주변에 다가와 있다. 이런 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바로 우리의 마음에 달려있다. 에이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거리낌없이 이야기하고 가슴을 열고 따뜻하게 감싸안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몫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