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처구니 없는 범죄들

2001-02-1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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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혜란 (LA카운티 검사)

얼마전 한 젊은이가 66세의 할머니를 칼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범인은 백주대낮 혼잡한 쇼핑몰 주차장에서 피해자의 머세데스 벤츠승용차를 카재킹하려고 했다. 피해자는 범인이 요구하는대로 차를 내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범인은 이 할머니가 자기 말을 "진지하게 받아 들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죽였다. 사람들이 달려와 범인은 현장에서 붙잡혔다. 이 사건은 정말 어처구니 없고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 범인은 차만 뺏어타고 달아나지 않았는가? 왜, 범인은 힘없는 노파를 찔러죽여야 했단 말인가? 어처구니 없다 못해 화가 나는 일이었다. 이 사건은 유죄가 확정될 경우 사형까지 선고가 가능한 중범 살인 케이스로 분류된다.

그러나 범인의 어머니가 나와서 범인이 정신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했었다고 말하는 것을 라디오 뉴스를 통해 들었다. 그렇다면 이사건을 단순히 살인으로만 분류할 수는 없다. 아마 변호인측에서도 이같은 사실을 사형을 면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려고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실정법이 있다. 우리가 살고있는 캘리포니아주와 LA카운티 모든 주민에게도 적용된다. 사람들 사이에 질서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정해진 법이다. 모든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이법을 잘 지켜나가고 감방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조차 못할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사회에는 정신장애로 인해 법을 어기는 사람들이 있다.


정신장애는 세가지 타입으로 분류될 수 있다. 첫째, ‘선’과 ‘악’을 어느정도 구분은 할 수 있지만 생물리학적 혹은 홀몬상의 이유로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외부적 요인에 의해 분노하게되면 살인까지 초래하게 된다. 카재킹 살인사건의 범인은 아마도 이타입에 해당되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둘째는 나이가 들거나 퇴행성 질환을 앓는 바람에 정신적 능력이 감퇴된 사람들이고 세 번째 타입은 날때부터 지적 능력이 부족한 정신박약아다.

두 번째 타입은 알츠하이머병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 몇 년전 일이다. 판사가 호명하자 백발이 성성하고 연약해보이는 70대 할머니가 비실비실 걸어 나왔다. 할머니는 얼굴을 붉힌채 뭐가 뭔지를 모르는 듯 했다. 자기 이름이나 기억하고 있는지 의문이었다. 이할머니는 수퍼마켓에서 식료품을 훔친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사실은 보호자가 할머니를 그로서리 쇼핑을 하라고 마켓에 데려다 주었는데 알츠하이머에 걸린 할머니는 물건값을 치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채 카트를 밀고 마켓밖으로 나가다 감시카메라에 적발된 케이스였다. 만약 이할머니가 물건 한두개를 주머니나 옷자락 속에 숨긴채 나가다 적발됐으면 다른 문제다. 물건을 감추려 했다면 훔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증거가 되지만 이할머니는 식료품 값을 내야한다는 사실을 잊은 것 뿐이다. 이 할머니에게 식료품을 훔치려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할머니는 실정법 위반으로 기소돼 법원에 출두해야 했다. 나는 이 케이스를 기각시켜주도록 재판부에 요청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타입에 해당되는 청년의 케이스가 있었다. 이 청년은 2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5살 어린의 지능을 가졌다는 사실 외에는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젊은이였다. 이 청년이 어린 사촌동생들을 성적으로 추행하려 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어느날 사촌동생들이 이웃 어린이들과 놀면서 이상스런 행동을 하는 것이 그 부모 눈에 뜨였다. 소년들이 바지를 내리고 서로 상대방의 성기를 만지며 놀았다는 것이다. 부모가 캐묻자 소년들은 그 지능이 떨어진 사촌형에게서 ‘그같이 노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검찰은 청년을 형사범으로 기소하지는 않고 보호관찰자 임명을 모색했다. 이는 병원이나 특정시설에 수용하거나 단순히 그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관찰하는 임무를 제3자에게 의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같이 다양한 타입의 정신장애자의 범법행위를 다루는 과정에 법과 그 적용 사이에 명확한 선이 그어져 있지는 않다. 우리는 "왜 법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미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범죄충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인가? 징역형이라는 처벌 위협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이같은 정신장애자들에게 법을 똑같이 적용할 수는 없다. 이 사람들에게는 미리 범죄를 계획하거나 사악한 생각을 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감방을 형벌로 보는 견해도 있다. 범법행위를 하면 감방에 갇히는 징벌을 받는다는 생각이다. 감방이란 법을 준수하는 사람을 해치지 못하도록 나쁜 사람들을 격리시키는 곳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범죄자를 대중으로부터 격리시킴으로써 커뮤니티를 보호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우리가 감방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사각지대가 있다. 범법행위에 처벌만이 적절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커뮤니티가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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