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개인차원 헌금은 소용없는 일"

2001-02-1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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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카운티 이천용 커미셔너

’이천용’이란 이름은 올드 타이머들에게는 아주 친숙하다. 28년전, 그러니까 1978년 LA 한인사회 초창기부터 시와 카운티, 그리고 연방정부의 커미셔너로 봉사하면서 오늘의 한인타운이 있기까지 초석 역할을 해온 몇 안 되는 인사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현 직함은 LA카운티 경제 및 능률위 커미셔너다. 이천용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름에서가 아니다. 대통령선거에서 LA 시장선거로 이어지는 정치 계절을 맞아 주류사회 정치의 뒤안길에 소상한 그로부터 조언이 필요할 것 같아서다.

LA시장 선거에 24명이 출마해 혼전이 예상됩니다. 앞으로 어떤 양상을 보일까요.


가장 큰 변수는 유대 커뮤니티입니다. 유대계지지 없이 승리가 불가능 한 게 LA시 선거였으니까요. 앞으로 양상은 유대계 지지 후보, 히스패닉을 대표한 후보, 흑인 커뮤니티 지지 후보의 각축전으로 압축될 겁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 해주시지요.

히스패닉 후보는 안토니오 비야라이고사 전 주하원의장과 하비어 베세라 연방하원의원 등 두명인데 결국 비야라이고사로 단일화될 겁니다. 제임스 한 LA시 검사장은 흑인계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유대계 커뮤니티가 밀고 있는 후보는 조엘 왁스 시의원과 스티브 소보로프 LA공원관리위원장입니다.

유대계가 가장 큰 변수 역할을 하는 게 LA시장 선거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소보로프나 왁스 의원이 유력하다는 이야기인가요.

흑인표가 뒷받침 돼 있는 한 검사장도 무시할 수 없지만 비즈니스맨 출신인 소보로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리오단도 비즈니스맨 출신인 데다가 기업계가 그를 지원하고 있지요. 150명의 LA시 커미셔너 중 3분의2가 유대계란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LA 시장선거에서 한인 커뮤니티는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우선 절대적 수에서 소수인데다가 투표율도 낮아요. 냉정히 이야기 해 ‘한국계 표’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하지요.

선거시즌이면 후보마다 한인타운 찾아오고 또 한인 단체나 단체장들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는 했지 않습니까.

그들이 타운을 찾는 것은 표를 겨냥해서가 아닙니다. 돈입니다. 특정 인사들이 개인적 베이스로 기금모금을 해주니까 오는 겁니다. ‘전체 한인 커뮤니티의 표’라는 인식이 아직 형성돼 있지 않아요. ‘정치적 파워’로서 한인 커뮤니티는 그 존재가 아직 희미합니다.

한인타운에서 거두어진 정치기금이 그렇게 많은데도 그렇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동안 한인타운에서 있었던 정치기금 모금은 커뮤니티 베이스의 기금모금이 아니었습니다. 커뮤니티 베이스에서 정치 헌금을 해야 후보들이 ‘한인 전체의 표’를 의식하고 또 당선되면 한인 커뮤니티 전체의 이해를 고려해 돕게 되는 겁니다.

커뮤니티 베이스의 정치헌금이 안 되는 이유는 어디 있다고 보십니까.

미주류사회가 인정하고 또 가교 역할도 하는 대표단체가 없는 게 주 이유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단체나 개인이 저마다 한인 커뮤니티를 대표라며 나서는 현실입니다. 부끄러운 일이죠. 또 반대로 카운티나 주, 연방정부 차원에서 한인 커뮤니티를 도우려고 해도 채널이 없어요. 주류사회가 인정하는 대표적 한인 단체가 없어 한인 커뮤니티는 그만큼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주류 정치인들도 이런 대표 단체와 접촉하게 마련입니다.

한인 단체가 수백개에 이르는데 그런 단체가 하나도 없다니요.

극소수 일부 단체가 봉사단체로 인정돼 정부 그랜트를 받고 있는 정도지요. 한인 커뮤니티 전체를 대표하는 커뮤니티 서비스 센터를 발족시키려는 노력이 없었던 게 아니지요. 제가 추진했었지요. 퍽 오래 전 박정희 대통령 때입니다. 와츠 폭동에 자극을 받아 연방정부 차원에서 소수민족 커뮤니티를 재정적으로 돕는 프로그램이 마련돼 각 커뮤니티가 경쟁적으로 봉사단체 발족을 서둘렀지요. 당시 영사관이 방해에 나서 안됐습니다. 새로 커뮤니티를 대표하는 단체가 생기면 바로 반정부 단체가 되지 않을까 본 모양이에요. 그래서 영사관이 한인회를 대표단체로 인정하는 정책을 적극 편 겁니다. 그 결과 한인회는 한국 정부가 인정하는 대표단체 역할은 잘 해왔는데 문제는 미주류사회에 한인 커뮤니티를 대표하는 봉사단체가 없게 된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인 LA시장 탄생의 기대는 꿈같은 이야기로 들립니다.

시의원을 먼저 배출하는 게 순서지요. 네이트 홀든 의원 지역구인 10지구가 한인 시의원을 탄생시키는 데 가장 유리한 선거구입니다. 히스패닉의 대거 유입으로 지역구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한인과 히스패닉은 노-사 관계로 묶여 있습니다. 이 관계를 잘 발전시키면 가능성이 있지요.

LA시가 원래의 LA, 밸리, 샌피드로 지역 등으로 3분화 될 가능성이 커지지 않습니까.

길게 보아 2년 후면 LA시 분할이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새로 떨어져 나가는 시의 시장도 선출해야 하고 또 시의원 선거구도 새로 조정되어야 하니까 정치판은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됩니다. 그 때가 기회입니다. 그 대비를 지금부터 해야 합니다.

가장 시급한 대비책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윌셔 거리를 봅시다. 죽어가던 이 지역을 한인들이 살렸습니다. 엄청난 힘입니다. 또 다운타운의 한인 상인들이 LA 경제에 기여한 바는 실로 대단합니다. 한인 인구도 엄청나게 늘었지요. 문제는 미주류사회가 모르고 있는 겁니다. 대표단체도 없고 공신력 있는 기구를 통해 한인 커뮤니티의 이같은 엄청난 잠재력을 연구해 발표한 게 없으니까 주류사회가 알 턱이 없지요. 한인 커뮤니티를 주류사회에 정확히 알리는 게 최우선 과제입니다. 한인 커뮤니티의 이같은 엄청난 파워를 알게 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그렇지 않아도 ‘한인 커뮤니티가 남가주 사회에 미치는 전체적인 경제적 영향력 연구’를 신용도가 높은 연구기관에 위촉해 이를 주류사회에 알릴 계획입니다. 이민 100주년도 됐으니 만큼 한인 커뮤니티의 오늘을 주류사회에 알리는 작업은 1세인 저희들이 반드시 해내야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이제는 2세들이 나설 때라고 봅니다. 진정한 의미의 커뮤니티 서비스 센터도 만들어야 하고, 또 정계에도 뛰어들어 한인 정치력도 신장시켜야겠지요. 1세들은 뒤에서 도와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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