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위험수위 가정폭력

2001-02-1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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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성훈 <사회부 기자>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인정신문을 받는 LA카운티 형사법원 30호법정을 약 일주일간 매일 방문한 적이 있다. LA지역 한인인구가 워낙 많아서 그런지 각종 범죄혐의로 법정에 출두하는 한인을 하루 한두명꼴로 접할수 있었다.

이 기간동안 법정에 상주하면서 관찰한것중 주목을 끄는 것은 수많은 한인관련 범죄중에서도 배우자를 폭행한 혐의로 법정에 끌려오는 케이스가 음주운전과 함께 1, 2위를 다투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인사회내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내를 때리는 남자들은 돈도 명예도 없는 타고난 실패자(born-loser)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유야 어떻든 아내에게 주먹을 휘둘러 법의 심판대에 서는 한인중 주위사람들로부터 ‘잘나간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배우자폭행 혐의로 체포돼 법원으로부터 교육명령을 받고 현재 한인가정상담소에서 가정폭력예방 강의를 듣고 있는 한인은 약 70여명. 이들의 직업만 보더라도 자영업자에서부터 택시운전사, 세일즈맨, 컴퓨터기술자, 물리치료사, 대학원생등 실로 다양하다. 이처럼 보통사람이 주류를 이루지만 폭력남편중 사회에서 존경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도 꽤 된다. 아내에게 손찌검을 한 죄로 쇠고랑을 차는 한인중에는 박사학위를 2개씩이나 가진 대학교수는 물론이고 의사와 변호사, 회계사, 그리고 언론인도 있다. 심지어는 목사도 손한번 잘못 쓴 죄로 법정에 서는 것이 한인사회의 서글픈 현실이다. 하루는 말대답을 한다는 이유로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부인을 한대 쥐어박고서는 법정에 와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80대 노인도 본적이 있다.


한인가정상담소의 이은희 카운슬러는 "한인커뮤니티와 가정폭력은 뗄래야 뗄수없는 관계"라며 "아내를 때리면 무거운 처벌을 받는다고 남자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설교를 해도 가정폭력범수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한순간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평생 후회할 일을 저지르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은 없다. 평생 가정폭력 전과자라는 딱지를 붙이고 사느니 웬만하면 한번쯤 여자에게 양보하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도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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