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맞춤아기’ 시대

2001-02-1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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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자로 학비를 버세요”

UCLA에 입학한 한인여학생 B는 학교신문에서 이런 광고를 보고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다. 영어로 egg라고 쓰여 있으니 “계란장사해서 학비를 벌라는 말인가” 언뜻 생각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egg가 계란이 아니라 난자라는 것은 그 밑에 자잘하게 쓰여있는 자격요건을 읽고 나서야 알수 있었다.

“키 5피트7인치 이상, 파란 눈, SAT 점수 1400 이상…”


UCLA 교내신문 데일리 브루인에는 이런 광고가 매일 너덧개씩 실린다. 미모에 머리 좋고 건강한 젊은 여성의 난자를 구하는 불임부부들이 꽤 많이 있다는 말이다. 제시되는 가격은 2만5,000달러에서 5만달러 정도. 난자로 학비를 벌라는 광고가 전혀 과대선전이 아니다.

‘무자식 상팔자’라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불임부부에게는 아기 갖는 것만큼 큰 소원이 없다. 게다가 옛날에는 딸은 아무리 낳아도 소용이 없고 아들로 대를 이어야 하기 때문에 아들 없는 여자가 감수해야 하는 설움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씨받이였다. 본부인이 수태를 못하거나 딸만 낳은채 나이가 들면 남편에게 씨받이 부인을 붙여 대신 아기를 낳게 하는 일이 사회적으로 묵인되었다.

‘난자 매매’는 현대판 씨받이의 한 변형인 셈. 난자는 제공하지만 수정란을 자기 몸에서 키우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전통적 씨받이와는 다르다. 반면 대리모는 불임부부의 수정란을 대신 몸에서 키워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과거의 씨받이에 더 가깝다.

과학의 발달로 앞으로는 본인들이 원하지 않는 한 불임부부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는데, 이런 추세와 함께 점점 강해지는 것이 사람들의 입김이다. 생명체의 잉태 과정에 인간의 입김이 끼여들 여지가 생기자 이왕이면 보다 우등한 아기를 갖겠다는 욕심이 고개를 드는 것이다. 명문대학 신문에 연일 ‘난자 파세요’광고가 실리는 것이 그 때문.

1년여 전에는 한 사진작가가 인터넷 웹사이트를 통해 미녀 모델들의 난자를 경매에 부쳐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난자보다도 팔등신 미녀들을 보려는 구경꾼들 덕분에 웹사이트 개설 24시간만에 110만명이 접속하는 기록이 세워지기도 했다.

며칠전 발표된 인간지놈지도가 인류의 삶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킬 전망이다. 앞으로는 같은 질병이라도 개개인의 유전자 특성에 따라 치료방법을 달리하는 ‘맞춤의학’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한다. 유전자의 비밀을 모두 밝혀내고 나면 사람도 원하는 대로 만들어낼수 있게 된다. 유전자 조작에 따른 ‘맞춤아기’시대가 오는 것이다. 앞으로 20년이면 그런 일들이 가능하다는 데 어린아이의 손에 칼을 쥐어주는 결과가 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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