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껄임 중독증과 휴대폰 문화

2001-02-1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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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석<정신과 전문의>

몇달전 뉴욕타임스 사설칼럼란에 ‘지껄임에 중독되다’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이 사람은 요즘 휴대전화의 범람을 지적하며 마치 담배를 중독자들이 손에 계속 들고 입에서 연기를 뿜어 내듯이 사람들이 전화를 쓰고 있는 것을 보고 쓴 글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만일 한국에 가봤더라면 기절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몇달 전에 내가 서울에 갔을 때 보니까 미국은 거기에 비하면 휴대전화가 절반도 보급이 안된 것 같다. 너도 나도, 특히 젊은 남녀들이 조그마한 핸드폰을 마치 목걸이인양 목에 걸거나 팔찌인양 팔에 휘어감고 다니다가 아무데서나 거기에 대고 지껄여 대는 것을 보고 눈살이 찌푸려졌었다.

셀폰이 많아진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로 인해서 사람들이 때도 장소도 안 가리고 지껄이게 됐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물론 지껄이는 것도 중독이 될 수가 있다.

중독의 종류도 많아서 마약, 음식, 섹스, 도박, 일하는 것, 거짓말 하기 등등이 있으니 지껄이는 중독도 있을 법한 일이다.


물론 사람이 자기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꼭 필요하지 않은 말을 함으로써 말썽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아서 동양에서는 말이 적은 것을 미덕으로 여겨 왔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너무 말이 없으면 바보 취급을 받기 때문에 할 말은 할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사실은 말의 많고 적은 것 보다는 어떤 말을 하느냐가 더 문제다. 즉 가십, 중상모략, 헛소문, 재미로 하는 말 등은 남도 해치고 자기도 해친다. 더구나 헛소문을 듣고 신이 나서 남에게 말을 전하거나 남의 사생활에 간섭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심스럽다. 이런 사람들은 남의 가십하는 것을 재미로 생각하고 신나게 지껄여 공동체 의식을 강화함으로써 자기가 속한 서클에서 제외되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갖고 고독감을 없애려는 데에 그 무의식적인 동기가 있다. 그리고 소문을 남보다 먼저 알고 남에게 전하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이 해를 입고 희생을 당하는 것쯤은 전연 개의치 않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그 헛소문의 대상이 된 경우를 생각해 보라.

불경의 가장 기초 경전인 천수경에 보면 그 첫 마디가 ‘정구업 진언’이다. 즉, 말을 깨끗이 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말은 그 사람의 마음가짐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들이 말조심을 하고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으면 이 세상은 한결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다. 말을 깨끗이 하려면 즉, 마음이 깨끗해지려면 우선 필요한 말만 하는 것이고 남에게 해가 될 것 같은 말은 피할 것이며 유익하고 건설적인 말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한 말은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하며 따라서 책임질 수 있는 말만 해야 된다.

기왕에 말에 대한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정신과 의사에겐 말이란 한없이 중요한 것이다. 말로 남을 치료해주니 말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이 말로써 남의 마음의 병을 치료해준다고 하니까 믿기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공부도 안하고 자기도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보았다. 이런 사람은 남의 마음에 큰 상처를 줄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프랑스실존주의 작가인 사르트르의 유명한 말이 있다. 즉, “지옥은 다른 인간들”이란 명언이다. 그 말은 진정 옳은 말이다. 나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 세상의 지옥은 다른 인간들이 잘못 지껄이는 말이다”라고. 셀폰이 아무리 많아지고 아무리 많은 인간들이 지껄이는 중독증에 걸려도 필요하고 깨끗한 말만 하면 이 세상이 지옥 아닌 천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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