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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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목과 같은 인생

2001-02-1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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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선)

지난해 대지가 넓직한 고가옥 한 채를 사서 완전히 개수하니 고자재가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다. 활용 가능한 자재들을 가려내고 폐목들은 화구에 넣기 알맞게 잘라서 산적해 놓았다가 금년 겨울 날씨가 싸늘할 때마다 한아름씩 안아다 때니 심상 좋았다.

그런데 그 헌 자재에는 어찌나 가시와 못, 장식, 볼트등의 쇠붙이들이 많아서 찌르는지 조심해서 다룬다고는 하지만 만질 때마다 손에 상처를 입어 고무장갑을 끼고 다뤄야했다. 그러나 아궁이에 넣고 불을 지피면 어찌나 잘 타는지 순식간에 재로 변한다. 그 재를 거둬서 채소밭에 묻으면 거름도 되고 곤충들을 쫓으니 일석이조의 효과를 본다. 그뿐이랴. 옛날에는 잘 탄재를 깨끗한 헝겁에 싸서 곪은 환부에 대면 고름을 말끔히 빨아내어 곧 아물므로 많이 활용했다.

나는 불타는 폐자재를 지켜보면서 폐목과도 같은 우리 인생사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다 교회나 어떤 모임에서 나 또래의 황혼 인생들을 만나노라면 어떤 사람은 박사학위가 두서너개에 과거 쟁쟁한 관직을 거치며 많은 저서들을 남겼는가하면 어떤 이는 기업인으로, 어떤 이는 당당한 체육인, 어떤 이는 미모로 명성을 떨치기도 했으나 이제 머리엔 찬서리가 내리고 건강이 무너지니 몰골이 말이 아니다. 난 속으로 “나이는 못 속이는구나! 누가 저를 과거의 그로 알아보겠는가?”하고 생각했다. “집이나 같으면 리모델링하여 새집처럼 꾸며 보겠건만 무너진 몰골을 어떻게 리모델링 한담! 이제 고자재에 붙은 헌 장식이나 헌 포대에 붙은 레텔이 하도 낡아 포대를 식별조차 할 수 없는 것이 되었으니 그 화려했던 옛 경력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런데도 퇴락한 건강 이리저리 땜질해봤자 여기저기 쑤시고 아픈 데는 어쩔 수 없는가 보다. 어떤 이는 말한다. “거, 하나님이 올 준비하라고 보내시는 신호인데 뭐 그리 발악을 하슈?”


그런데도 어떤 이는 과거에 한가닥하던 때만 생각하고 말에나 행동에 있어서 항상 우위를 찾으려하고 대접해주기들 바라는데 그렇게 해주지 않는다고 사뭇 불평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마구 옛 가시로 찌르고 낡은 장식으로 계속 긁어대니 주변사람들이 몹시 아픔을 느끼는 모양이다. 그러나 슬기로운 자는 사랑과 겸손의 고무장갑을 끼고 대하니 아픔을 면하는가보다.

젊어서는 피 기운에 살고, 갱년기 이후는 밥 기운에 사나 환갑이 지나면 약 기운에 살고 그 후는 뜨거운 물 속이나, 뜸, 온열기둥의 열기로 산다. 불에 탄 재는 채소밭 거름이나 곤충예방이나 환부에 쓰이는데 우리는 후세들을 위해 어떻게 쓰이면 좋겠는지 곰곰이 생각하는 동안 아궁이의 나무는 다 타고 시뻘건 숯들이 마지막 호흡을 헐떡이며 뱀의 혀같은 시퍼런 불을 내뿜고 있었다. ‘지옥불이 저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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