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주 한인의 품위를 지키자

2001-02-0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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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설

본국 정치인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다. 명분이 없는 미주 방문이 너무 잦은 데다가 미주 한인 사회에 대해 무책임한 선심성 공약만 남발, 결국은 공수표가 되면서 이들에 대한 비판은 일종의 분노감으로까지 일부에서 표출되고 있다.

한국 정치인의 잦은 방문과 관련해 미주한인 사회에 독특한 풍속으로 자리잡게 된 게 ‘간담회’다. ‘실세’로 통하는 정치인은 물론이고 심지어 지방의 시의원이 와도 반드시 ‘교포 간담회’라는 게 열린다. 이 간담회의 취지는 해외 여론을 수렴해 국정에 반영한다는 것인 모양인데 취지대로 현지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됐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해마다 한국 정치인들이 그토록 뻔질나게 미국을 방문하고 그 때마다 ‘교포 간담회’라는 것도 빠지지않고 열리지만 미주 한인 사회의 숙원 사업이 속시원하게 해결된 게 전무한 상태여서 하는 말이다. 거기다가 기존의 해외동포정책마저 현지 사정과는 오히려 동떨어진 방향으로 왜곡되거나 축소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재외동포재단 예산문제만 해도 그렇다. 재외동포 단체에 대한 한국정부 지원금이 터무니 없이 적게 배정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국정감사차 미주를 방문한 국회의원들도 그 문제점을 파악, 이에 대한 시정을 공개적으로 약속했다. 그러나 올해들어 재외동포지원 예산은 오히려 줄었다. 이중국적 문제, 시민권자 병역문제 등 다른 현안문제도 달라진 게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같은 ‘무책임한 공약 남발사태’는 일단 정치인들에게 그 책임이 있다. 이들의 미국방문은 사실이지 ‘국내용 홍보’가 주 목적이다. 부시대통령 취임을 전후해 떼지어 미국 방문길에 나선 한국 정치인들의 낯뜨거운 행태도 따지고 보면 ‘국내 홍보’에만 신경을 곤두 세우다가 빚은 추태다. 이런 한국 정치인들이고 보니 ‘교포 간담회’를 자신의 표 관리를 위한 국내 홍보의 들러리 행사정도로 인식, 겉치례 말로 때우는 경향이다.

보다 근본적 책임은 그러나 한국 정치인에 대해 비굴할 정도로 저자세를 보이는 일부 단체장과 이같은 풍토를 허용하고 있는 미주한인 사회에 있다는 생각이다. 지명도가 어느정도 있는 본국 정치인이 기착지로 LA를 잠시 방문했다고 하자. 그를 그냥 두지 않는다. 간담회다, 환영회다 하며 요란스레 맞이한다. 그 정치인이 여권의 실세면 눈도장 찍기 경쟁도 벌어진다. 이런 모임에서 나오는 소리는 공연한 아첨이고, 무책임한 공약이 되기 십상이다.
중요한 건 당당한 주인의식이다. 정중하지만 중심을 잡고 대할 때 한국 정치인의 미주 한인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다. 미주 한인의 품위를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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