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부시 대통령이 가는 길

2001-01-2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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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 칼럼

▶ 이철 주필

한국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가도 중요하지만 미국에 사는 우리에게는 미국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가가 더욱 중요하다. 이민, 세금, 교육, 웰페어, 비즈니스등 모든 분야에 걸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는 4·29폭동에서 코리언 커뮤니티가 배운 뼈아픈 교훈이다. 공화당인 레이건 대통령이 웰페어 제도를 웍페어(workfare)로 고친답시고 빈민들에게 주어진 연방예산을 대폭 줄여 흑인 빈민들이 살기조차 어려워졌었고 결국 이 불만과 울화가 한인사회를 향해 폭발한 것이 LA 폭동의 배경이다.

조지 W. 부시는 어떤 사람인가. 신임 부시 대통령을 줏대 없이 허약하고 마음만 좋은 점잖은 정치인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은 부시를 잘못 파악한 것 같다.


부시는 전형적인 텍사스 사나이다. 전형적인 텍사스 사나이라 해서 존 웨인 스타일인가 하면 그보다는 게리 쿠퍼 스타일이다. 성격이 원만하면서도 혼자 도전할 때는 아무도 그의 고집을 꺾지 못한다. 영화 ‘하이눈’의 게리 쿠퍼를 연상하면 된다.

조지 W. 부시가 어떤 사람인가를 부시 스스로가 설명한 적이 있다. 텍사스 주지사 시절 그는 모든 참모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모를 보냈다.

“당신들이 내 사무실에 들어오면 맨 먼저 벽에 걸려 있는 그림을 봐 주시기 바랍니다. 이 그림은 우리 모두가 무슨 목적을 가지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말이 필요 없습니다”

이 그림은 화가 케너의 오일 페인팅으로 카우보이 3명이 말을 타고 가파른 산을 올라가는 것으로 리더는 모자가 벗겨진 채 땀을 흘리며 말을 채찍질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림의 제목은 ‘끊임없는 도전’으로 찰스 웨슬리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그의 담대한 도전과 의지력은 아버지인 부시 전대통령과 어머니인 바바라 여사도 놀랄 정도다. 왜냐하면 무명의 사업가인 그가 현직 텍사스 주지사이며 민주당의 여걸 정치인인 앤 리처츠를 꺾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인 바바라 여사마저 “앤 리처즈에게 도전한다는 것은 무리다”라면서 처음에는 말렸다고 한다. 그러나 부시는 이 도전에서 자신이 누구인가를 가족은 물론 친구들에게 입증했다.

부시는 아버지와는 달리 공화당내 보수 강경파에 속한다. 그는 아버지 부시 전대통령이 미국의 화합을 외치며 온건파 노선을 걷다가 공화당 보수 강경파로부터 의심을 받아 결국 페로와 뷰캐넌을 탄생시켰으며 이 때문에 재선에 실패한 쓰라린 경험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대통령이 행사장에 입장할 때 울려 퍼지는 음악은 ‘Hail To The Chief’다. 그런데 엊그제 부시의 대통령 취임식장 앞에서 데모데들이 내건 플래카드의 구호중에는 ‘Hail To The Thief’라는 것이 있었다. ‘도둑놈 환영’이라는 뜻이니 이 TV 뉴스를 본 부시 대통령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짐작이 간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정말 화합할 수 있을까. 부시는 그것이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버지의 재선 패배에서 목격했기 때문에 지금은 화합을 외치지만 어느 때가 되면 강경 보수 정책의 깃발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의 어느 보좌관이 말했듯이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이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다음 선거에서 재선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재선이 되려면 보수 온건파이어서는 안된다. 닉슨과 레이건의 재선 성공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따라서 부시 대통령은 말할 때는 온건파지만 행동하는 것은 보수 강경파인 ‘두개의 얼굴을 가진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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