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초만원 교도소’ 후보들은 침묵 일관

2000-11-0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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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 리뷰

▶ 옥세철 논설위원

소셜 시큐리티제도의 문제점이 새삼 제시된다. 교육문제도 이에 못지 않은 핫 이슈로 떠오른다. 농촌문제도 클로즈 업된다. 선거란 이래서 좋은 것이다. 대선 후보는 물론이고 연방의원, 주지사등 각급 공직 출마자들은 지역사회가 맞은 문제에서 전 미국이 맞은 문제를 조목별로 열거하면서 저마다 처방전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한가지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폭발적 증가세의 수감자 문제다. 미국의 범죄율은 수십년래 최저 수준을 보이고 있다. 밝은 뉴스다. 그러나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문제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수감자 문제로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은 여러 면에서 ‘세계 넘버 1 기록’ 국가다. 최다 교도소 수감인구가 그 기록의 하나다. 연방 및 주 등 각급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수형자 인구는 줄잡아 200여만으로 사상 최대다. 200만 수감자라는 숫자는 지난 70년대에 비해 무려 6배가 넘는 수치이고 전 세계에서 단연 톱을 달리는 이같이 높은 수감률 유지를 위해 미국은 연간 4000여억달러의 돈을 쏟아 붓고 있다.

2000년 10월현재 미국의 수감자는 인구 10만명당 690이다. 러시아의 수감자 인구비율을 훨씬 웃돈다. 영국에 비해서는 5배, 캐나다, 호주, 프랑스, 이태리등 국가에 비해서도 6-7배나 높다. 일본에 비해서는 무려 17배나 높은 수준이다. 교도소 인구가 이같이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언론은 별반 주목을 않는다. 또 흑인남성의 수감률은 백인의 8배에 이르러 교도소인구 폭발과 함께 전체 흑인 커뮤니티가 황폐화되는 상황을 맞고 있어도 미국사회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지난 10월 11일 대선 후보 2차 TV토론 때 앨 고어와 조지 W 부시는 사형제도 및 범죄문제에 언급할 기회가 있었다. 본래 보수파인 공화당이 범죄문제에 대해서는 보다 강경한 입장. 진보파인 민주당은 온건한 입장인 게 전통이다. 그런데 고어는 한 술 더뜨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선거시즌에는 여러가지 금기가 있다. 범죄자에게 온건한 입장을 보이는 것이 그중 하나다. 자살골과 마찬가지인 행위로 간주된다. 1988년 대선시 민주당 후보 마이클 두카키스가 범죄문제에 미온적 입장을 보이다가 호되게 당한 실수에서 얻어진 교훈이다. 이후 민주당도 범죄문제에 관한한 보수 공화당에 못지않은 강경자세로 일관하게 된 것이다.

이후 정치권에는 일종의 초당적 컨센서스가 이루어졌다. 범죄퇴치에는 공화, 민주가 따로 없다는 컨센서스이고 이 합의를 깨는 발언은 정치적 금기를 건드리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돼 왔다. 1992년부터 일어온 현상으로 위험한 범죄자들은 사회와 격리하자는 게 정치권의 암묵적 합의사항이 되어왔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선거시즌에 범죄자의 인권을 운운하는 것은 표떨어지는 비결이 될 수 있다.

수감자문제와 관련해 그러나 새로운 컨센서스가 형성되고 있다. 그 동안의 대처 방안은 한마디로 ‘너무 지나쳤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지적은 강경 보수파에서 오히려 나오고 있다. 리차드 포스너 연방고법 판사, 제임스 윌슨 UCLA교수등은 법조계에서 범죄에 대해 강경파로 정평이 난 전문가들. 이들이 앞장서서 마약사범 가중처벌법, ‘3진법’등 형사처벌법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법은 마약사범에대해 의무적으로 중형을 때리도록 규정하고 있는 연방법이다.

미 전국 교도소 수감자중 상당수는 마약사범이다. 마약사범 수감자가 특히 많은 이유는 초범에 경미한 혐의일지라도 최소 5년이상의 반드시 실형을 선고토록 되어 있는 법 때문이다. 그 결과 나타난 현상이 사회적 격리가 필요한 위험한 범죄자는 오히려 조기에 석방되는 반면 경범에 비폭력적인 마약사범의 구금기간만 늘어나는 것이다. 5그램정도의 ‘크랙’을 소지하고 있다가 체포되면 최소 5년형을 받는데 주택침입 강도범은 2년형을 받는 게 고작이다.

문제는 이처럼 마약사범으로 교도소가 만원을 이루고 있지만 마약범죄는 오히려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중범 전과도 없고 또 비폭력적인 이 경미한 마약사범들이 교도소 생활이 길어지면서 진짜 프로페셔널 범죄꾼으로 변모한다는 데 있다.

200여만 수감자중 절반정도는 경미한 마약사범이거나 단순절도등 비폭력성 범죄자들이다. 이런 유형의 범죄자는 사회에 위협적 존재가 아니다. 따라서 이들에게 무조건 실형을 선고해 처벌하기보다는 집행유예등 가벼운 처벌이 더 바람직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경비도 절감되고 또 범죄예방 효과도 훨씬 크기 때문이다.

클린턴-고어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보다 완화된 행형정책이 실시될 것이라는 기대가 일부에서 있었다. 클린턴 대통령이 20대 흑인인구의 30%정도가 수감자라는 현실에 개탄, 사회적 부정의를 강력히 비판하고 나서 기대가 특히 높아졌던 것이다. 그러나 클린턴은 경미한 마약사범(대다수가 흑인이다)의 형량을 낮추려는 미선고공판위원회 안을 봉쇄하는 법안에 서명함으로써 그 기대를 저버렸다.

범죄문제는 올 선거에서 이슈가 되지 못하고 있다. 수감자 문제는 아예 논외의 대상이다. 이 문제에 대해 잘못 발언을 하면 자충수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행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있는 수감자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 머지않아 정치권을 강습하는 핫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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