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민 초년생이 넘어야할 장벽

2000-11-0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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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 김<가주고용개발국(EDD)근무>

따르릉, 따르릉.

"여보세요, 어제 회사를 그만두었는데, 어디서 돈주는 게 있다면서요? 한국말로 서비스를 받을 수는 없나요?"

이런 저런 문의에 대답을 주고, 직업을 알선하고, 정부의 각종 혜택에 대해 소개하고, 각양각색의 여러 민족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드는 생각이 있다. 한인사회는 오직 우리 한인들만이 지켜나갈 수 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한사람 한사람의 한인들이 서로를 믿고 지켜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겠지만, 우선적으로 우리의 자녀, 이민 후배들에게 한국사람이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주고, 우리의 권리와 요구를 주장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미국은 양반의 사회가 아니라고 누가 그러던가? 미국은 요구가 있어야 실천이 따르는 나라다. 얌전을 빼고 가만히 앉아있는 새색시가 되어서는 이 큰 미국 땅에서 한인의 지위는 허공에 맴도는 메아리에 그치고 말 것이다.


우리는 미국에 살면서도 우리가 한국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또는 영어를 미국사람만큼 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지레 뒷걸음질 친 일은 없는지 생각해 볼일이다. "내가 창피하게 나라에서 어떻게 돈을 타고 사느냐" "영어도 못하는데 그냥 넘어가지 뭐". 엄연히 미국에서 생활하고, 미국에 세금을 내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실직을 당해 실업수당을 신청하고 싶은 경우, 신청자가 EDD에 전화로 실업수당을 신청하게 되어 있다. 영어가 불편한 사람의 경우, 스패니시, 중국말, 베트남 전화라인이 따로 있어 신청자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말 라인은 설치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영어가 불편한 한인의 경우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 뿐인가? 대부분의 관공서 서면양식을 보면, 한국말로 번역되어 있는 것을 구경하기 힘들다. 그러나 스패니시 양식은 어디를 가나 쉽사리 찾을 수 있다. 왜 한국말라인이나 한국말 양식은 없는 것일까? 히스패닉이나 중국사람들보다 한인이 특별히 영어가 능숙하여 한국말 서비스가 필요 없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한인들 중에서는 많이 이용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필요성을 덜 느끼는 까닭은 아닐까?

우리의 과거를 한번 돌아보자. 양반은 일주일을 굶어도 배가 고프다는 소리를 못하고, 책만 읽었다고 하지 않던가? 이렇듯 선비사상과 유교사상이 주를 이루었던 그 옛날부터 우리는 남에게 나의 약점을 감추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다. 남에게 피해가 되는 일은 삼가도록 교육받아 왔고, 모르는 것을 큰 수치로 알았다. 미국에서 영어를 못하는 것은 한국에서 한국말을 못하는 것이나 매한가지이므로 무식이 될 수 있지만, 우리 이민자들에게는 언어란 큰 장벽이며, 풀지 못할 숙제와도 같다. 나이 탓일 수도 있고, 시간 탓일 수도 있고, 또한 돈의 문제일 수도 있다. 물론 노력이 부족한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복합적인 문제, 즉 가족과 생활의 급선무를 해결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시간을 놓쳐버린 것이다. 영어에 서툴다고 가족을 굶기며, 영어책만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타민족들은 한인들보다 특별히 영어를 잘하기에 그들의 목소리를 높이고, 그들의 권리를 찾아가며 살았던가? 아니다. 그들은 목소리를 높이고, 권리를 주장하고, 제자리를 찾으려고 무단히 노력한 대가로 지금 위치까지 오게 되었다. 한인들은 대체 언제까지 움츠리고, 남의 눈치나 보면서 나무에 달린 감이 저절로 떨어지기만을 기다릴 것인가? 우리도 한인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정당하게 요구할 때가 되었다. 우리의 자녀들과 수없이 많을 한인 이민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미국은 양반다리를 하고 점잔을 뺀다고 알아주는 나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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